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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 한진家] 조중훈 기념관 짓겠다던 부암장…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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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일가족 간의 균열은 이대로 봉합될 것인가. 경영권 유지라는 대의를 위해 화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아직 평화로운 가족 공동경영을 위한 현실적인 이해관계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서로 수용 가능한 주고받기가 없으면 언제든 다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흩어지면 같이 죽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한 번 깨진 접시를 완벽하게 이어붙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우군과 적군을 분별하기도 쉽지 않다. KCGI, 델타항공, 반도그룹 등은 한진칼 지분을 계속 사들이며 계산기를 두들기는 중이다. 지금은 내 편에 서 있지만 언제 다시 방향을 틀어 발톱을 드러낼지 모른다.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연금과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은 어느 쪽에 서야 할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3대에 걸쳐 그룹 지배력과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의 분기점에 서 있는 한진가 3세들. 이들이 한진그룹 지배력을 확보해 온 과정과 현재 상황, 앞으로의 변수들을 짚어보고 남매 공동경영 체제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본다.




[아시아경제 유현석 기자] 지난해 12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자택을 방문했다. 당시 조원태 회장은 이 고문과 심한 말다툼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집안 물품이 파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조 회장과 이 고문이 말싸움을 벌였던 곳은 평창동 자택으로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2014년 2월부터 살아왔던 집이다.


이와 비슷한 장소가 하나 더 있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자택이었던 부암장이다. 과거 고 조중훈 회장의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4남인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이 장남인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부암장과 관련된 소송을 제기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이유는 다르지만, 이 두 곳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진가 2세들과 3세들이 부친이 돌아가신 뒤 다툼이 벌어졌던 공간이라는 것이다. 평창동 자택 다툼보다 더 이전의 다툼이 있었던 부암장을 지난 5일 찾아갔다.


부암장 근처에는 흥선대원군이 별장이었던 석파정과 석파정 서울미술관이 위치했다. 일요일을 맞이해 연인 혹은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부암장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북적한 미술관 쪽과는 다르게 적막하고 쓸쓸한 모습이었다. 올라가는 길에는 오직 부암장의 거대한 대문만이 반겨줄 뿐이었다.


대문을 지나 담장을 따라 한 바퀴 돌아봤다. 키보다 높은 담장으로 인해 안쪽의 모습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겨울을 맞이해 시들어버린 덩굴들과 낙엽들이 담장 위에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한 바퀴 돌고 난 후 굳게 닫힌 대문 앞에 다시 섰다. 오래된 세월로 인해 낡아버린 대문 가운데에 갈라진 틈이 보였다. 갈라진 틈 사이로 부암장의 내부의 모습을 살짝 확인할 수 있었다. 틈 사이로 보인 부암장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바닥에는 흔한 낙엽도 보이지 않았다. 관리인이 있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 외에는 옛날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암장은 고 조중훈 회장이 개인 주택 겸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2000평 규모의 한옥으로 한진가 2세들이 소송을 벌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조중훈 회장 별세 직후인 2002년 말 조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이 부암장에 기념관을 건립키로 합의했는데도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2008년 초 손해배상과 지분 이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결국 2011년에 법원이 제시한 화해 권고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기념관 건립 합의 이후 18년, 법원의 화해 권고안 수용 9년이 지났지만 부암장은 고즈넉한 한옥이었을 뿐 기념관처럼 보이는 것은 안보였다. 당시 한진그룹은 특정 시점에 부암장에 기념관을 건립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암장은 정석기업 소유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내 부동산 매매·임대업과 건물 관리를 맡은 기업으로 비상장사다. 이명희 고문이 6.8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이 각 4.59%를 가지고 있다. 2018년 기준 자산 2619억원, 부채 459억원이다. 특히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 정석기업은 그룹 내 알짜로 꼽히고 있다. 이로 인해 한진가 3세의 상속세 납부를 위해 정석기업이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부암장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근처 정비업소에 들러 부암장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관리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장님이 돌아가신 후 가끔 회사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창업주의 생가가 쓸쓸하게 방치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편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평창동 자택은 부인 이명희 고문에게 전부 상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동 자택은 지하 3층~지상 2층 건물로 고 조 전 회장이 이 고문과 공동명의로 새롭게 지은 집이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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