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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전 지자체 신용 갉아먹은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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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환 가능한데 정치적 판단
지방 정부 신용 믿기 어려워져
지자체 사업 자금조달 부담 확대될 듯

강원도가 춘천 레고랜드에 제공한 지급보증을 적시에 이행하지 않으면서 신용을 기반으로 굴러가는 자본시장을 흔들고 있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개발사(SPC)의 법정관리 절차를 진행한 뒤에 차입 원리금을 상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지방 정부(지자체) 보증의 디폴트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체 신용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금리 상승으로 자금 시장이 어려워지는 와중에 시장을 전혀 고려치 않은 지자체의 디폴트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의 신용 스프레드를 확대시켜 시장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최고 신용도를 보유한 지방 정부에 대한 신용이 깨졌으니, 신용도가 낮은 금융회사와 기업의 신용도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일반 회사채나 CP 시장 경색에 강원도가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 금리 인상과 부동산시장 추락, 금융회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으로 자금 시장이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어서 신용 경색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 때문에 자금시장 경색의 탓을 강원도에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렵게 버텨나가던 시장에 레고랜드 사태가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금융 당국이 채안펀드, 증권금융을 통한 유동성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시장이 진정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증권사 PF-ABCP(프로젝트파이낸싱 유동화어음) 매입확약에 따른 유동성만 하루에 1조원 가까이 돌아오는데 고작 몇조원 정도의 유동성으로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은이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으로 적극적으로 돈을 푸는 것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일이다. 정부가 코로나 사태 때처럼 큰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긴급 유동성 지원으로 사태가 진정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사태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방 정부의 디폴트 선례를 남겼다. 1994년 미국의 오렌지카운티 디폴트 사태는 지방 정부의 재정 파탄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이번 디폴트는 강원도의 재정 상태와는 무관한 이슈다. 2000억원 남짓의 레고랜드 사업 차입금을 충분히 상환할 수 있는데도 다분히 정치적 판단을 개입시켜 신용으로 굴러가는 시장을 초토화시켰다. 현금이 없으면 지방채라도 발행해 차입금을 우선 상환해야 한다는 시장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발 사업 과정에서 비리나 불법 등의 문제가 있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했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


강원도의 결정은 전국 지자체 사업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정부는 도로, 항만, 지하철 등의 인프라 건설, 관광단지 개발, 산업단지 조성 등의 주요 사업을 추진할 때 사업용 SPC에 지급보증을 제공해 차입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시장이 지자체 지급보증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전국 지자체가 사업 자금을 조달하는데 상당한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변화에 따라 임의 디폴트가 가능하다면 지자체 신용도에 대한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전국 지자체 사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던진 돌은 자금시장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에 바윗돌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시장과 지자체를 지원해야 하는 중앙 정부의 부담도 커지게 됐다.

임정수 자본시장부 부장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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