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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흥국생명 사태가 불러온 영구債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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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사태’는 회사가 영구채(신종자본증권)를 조기 상환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태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이번 사태로 제기된 영구채 논란들을 재정립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영구채는 채권과 자본의 특징을 섞어 놓은 하이브리드성 유가증권이다. 만기는 30년이지만, 만기를 추가로 연장할 수 있어 영구채로 불린다. 보통 발행 후 5년이 지나면 발행사가 콜옵션을 행사해 원리금을 조기에 상환할 수 있다. 조기 상환이 유리하지 않다면 페널티 금리를 추가로 내는 것(금리 스텝업)을 감수하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도 된다. 발행사가 이자 지급도 계속 미룰 수 있다. 미룬 이자는 누적해서 나중에 한꺼번에 지급할 수 있다. 원금과 이자 상환에 대한 모든 선택권은 투자자가 아닌 발행사가 갖고 있다.


영구채는 발행사가 상환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상환 강제성이 채권보다 훨씬 낮다는 이유다. 회계상 자본이어서 자본이 들어가는 각종 재무비율 개선에 활용된다.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BIS비율, 보험사의 지급여력(RBC)비율, 여전사의 레버리지배율, 기업의 부채비율 등을 개선하는 데 사용된다.


흥국생명 사태에 대입해 보자. 2017년 흥국생명이 발행한 영구채의 금리는 연 4.475%다. 올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스텝업을 적용하면 연 6.7%의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영구채를 조기 상환하고 시장에서 재발행하면 연 10%에 육박하는 이자가 발생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흥국생명은 연 6.7%의 이자를 내기로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영구채를 고금리로 재발행하는 것보다 콜옵션을 행사하는 편이 이자 부담도 낮고 RBC비율도 잘 유지할 수 있다. 실리를 따진 경제적인 선택을 레고랜드 사태와 유사한 사안으로 치부해 신용경색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게 정당한 것인가. 레고랜드 사태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면 흥국생명 사태는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두 사안 간 차이가 크다. 오히려 흥국생명은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시장금리 상승의 피해자로 봐도 무방하다.


콜옵션 행사가 관행이라는 주장에도 어폐가 있다. 영구채는 여태껏 저금리 상황에서 계속 발행돼 왔다. 발행사 입장에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1~2% 이상의 페널티 금리를 내는 것보다 낮은 금리에 영구채를 재발행하는 게 유리한 시장 상황이 최근 10여년간 지속됐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발행사가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이자 부담 측면에서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콜옵션 행사를 관행이라는 프레임으로 엮어 기업들이 경제적 선택을 할 수 없도록 압박하는 건 옳은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한 관계자는 "영구채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발행사의 콜옵션 행사 시점까지만 금리 변동이나 환 변동에 대한 헤지(Hedge)를 해 놓는다"고 귀띔했다. 조기 상환을 받지 못하면 시중금리 상승으로 투자자들은 큰 규모의 손실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오히려 영구채를 조기 상환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몽니는 아닐까. 흥국생명 영구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은 콜옵션 미행사를 예상치 못한 투자자들의 투매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당한 권리 행사가 잘못인지 시장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영구채 조기 상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을 못한 투자자의 잘못인지 따져볼 일이다. 영구채 발행 과정에서 발행사가 "조기 상환할테니 금리 낮춰달라"고 요구했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기 상환하겠다는 발행사의 구두 계약이나 암묵적 관행이 발행사와 투자자 간의 법적 계약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매년 수조원의 영구채 콜옵션 행사 시기가 도래한다. 그런데 국내 금융사와 기업들은 스스로에게 유리하더라도 계약 조건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매번 시장의 압박에 콜옵션을 행사해야만 하는가. 이토록 상환 강제성이 높다면 영구채를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해 주는 것에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임정수 자본시장부장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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