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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로 불황 돌파]①유동성 확보에 기업매물 쏟아진다…"현금 가진 기업은 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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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불황 우려에 연초부터 대어급까지 매물 연이어 나와
고금리에도 사업 재편 노리는 대기업·사모펀드 매수자로 나서
정부, 공개매수 등 M&A 관련 규제 정비 나서

편집자주정부와 금융당국이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정비하고 구조조정 활성화도 추진한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기술 개발과 설비투자 등이 부진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침체했던 M&A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장기 불황 우려에 몸값을 낮춘 매물이 나오고 있고,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 등에 따라 사업 재편의 기회를 노리는 대기업·사모펀드 등이 고금리 상황에서도 인수자로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 규모는 2013년 49조1000억원에서 2021년 134조1000억원 규모로 급격히 성장했다. 저금리 등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덕이 컸다. 지난해는 달랐다. M&A 시장이 78조7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전년 대비 거래 규모가 41%가량 감소했다. 시장이 커질 때와는 정반대 이유 때문이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발 고금리에 따라 유동성이 확 줄어든 탓이 컸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파는 쪽에서는 (아직은 불황에 견딜 만해서 가격을 더 받기 위해) 버텼고, 사려는 쪽에서는 자금 조달 여건이 나빠져 선뜻 나서지 못했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확 쪼그라든 M&A 시장…경기 악화에도 다시 꿈틀

올 들어선 분위기가 다시 달라졌다. IB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식매매계약(SPA)을 발표한 거래액 규모는 5조7000억원 규모로 지난해 1분기 3조4000억원 대비 약 67% 늘었다. 다양한 산업에서 굵직한 기업이 매물로 쏟아졌다. HMM, LG화학 진단사업부문, SK해운 유조선 사업부, SK에코프라임, SK쉴더스, SM엔터테인먼트, 쌍용레미콘, 전주페이퍼, 보령바이오파마, 대경오엔티, 태웅메디칼, 대보마그네틱, 서린컴퍼니, 슈에, 엠로, 일진머티리얼즈, 오스템임플란트, 넥스플렉스 등이 매물로 나왔다.


고금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더욱 커진 영향이다. 불황 탓에 '캐시카우'로 불리던 사업 부문도 흔들리자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기업들은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유동성 확보가 관건인 사모펀드(PEF)들도 포트폴리오 정리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있거나 사업 재편을 노리는 기업·사모펀드 등은 이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활용할 태세다. 경기 침체 또는 불황기에 M&A는 산업·기업의 경영 효율화나 사업 재편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M&A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경기 회복에 마중물도 될 수 있다.


LG화학은 비주력 사업인 진단사업부문 매각을 진행 중이다. 가격은 1000억원대 초반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LG화학 생명과학 부문의 사업구조 재편과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LG화학 진단사업 부문은 1986년 체외진단 시약 연구를 시작하는 등 역사가 깊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LG화학은 생명과학 부문 제약 바이오 사업의 밑그림을 새로 그리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1월 미국 항암 신약 개발 기업 아베오 테라퓨틱스를 5억7100만 달러(약 7000억원)에 인수했다. 아베오 인수 발표가 나오고, 진단사업 부문 매각 추진이 가시화하면서 구광모표 신약 사업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쉴더스도 대형 매물로 관심을 모았다. 투자전문회사를 표방하는 SK스퀘어의 첫 투자금 회수 사례다. SK스퀘어는 지난달 맥쿼리자산운용과 더불어 스웨덴 발렌베리가문 계열 사모펀드 운용사인 EQT파트너스에 자회사 SK쉴더스 경영권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SK스퀘어는 총 8646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은 오는 8~9월 4000억원가량이 1차적으로 들어오면 이를 자사주 소각에 활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각에선 SK쉴더스의 물리보안·정보보안 사업의 경쟁력이 있지만, SK그룹이 불확실한 거시경제 상황에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팔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올해 10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2차전지 기업 SK온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지만 고금리 상황에서 비상장사인 SK온의 투자 여력이 크지 않다.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투자전문회사를 표방한 SK그룹이 한참 시장이 좋을 때 국내외 대형 프로젝트성 투자를 많이 했다"라며 "기업이 후순위로 들어가고 기관이 선순위로 들어간 프로젝트가 꽤 있었는데 시장 상황이 나빠져 손실이 나면서 부담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귀띔했다.


HMM도 M&A 시장의 대어로 꼽힌다. 호황을 누리던 해운업황이 꺾이는 국면에서 매물로 나왔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최근 삼성증권, 삼일 PWC, 광장을 매각 자문사로 선정하고 HMM 지분 40.7%를 팔 계획이다. 해운업황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호황을 누렸지만, 최근 들어 나빠지고 있다. 경기 침체로 물동량·화물운임 모두 떨어지면서 맥을 못추고 있다. 화물운임은 2분기 더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HMM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기업은 현대글로비스(현대차그룹), 대한통운(CJ그룹), LX인터내셔널(LX그룹), SM상선(SM그룹), 현대중공업 등이다.


사모펀드도 포트폴리오 조정 활발

사모펀드들도 다량의 바이아웃(경영권 거래) 매물을 내놓고 있다. 장기 불황이 예상되는 산업 분야에서 선제적인 포트폴리오 정리 차원으로 해석된다. 한앤컴퍼니는 SK해운 유조선 사업부, SK에코프라임, 쌍용레미콘 등을 매물로 내놨다. 해운업은 호황이 지나가고, 건설업 불황은 장기화하고 있다.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분야에서 적절한 매각 타이밍을 잡으려는 발 빠른 움직임도 있다. IMM 프라이빗에쿼티(PE)는 반도체 산업용 가스 업체 에어퍼스트 소수 지분과 화장품 브랜드숍 1세대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 매각을 추진 중이다. 그간 침체했던 화장품 산업이 중국 리오프닝과 더불어 회복세를 보이자 이를 매각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 PE는 전주페이퍼 재매각을 추진 중이고, 스틱인베스트먼트는 대경오엔티 매각을 진행 중이다.


10조원 규모의 실탄을 가지고 있는 MBK파트너스는 미래 가치가 높은 기업을 속속 매집하고 있다. 지난해 몸값 2조4600억원에 이르는 구강스캐너 기업 메디트를 인수한 데 이어, 올해 들어 UCK와 연합해 오스템임플란트를 인수했다. 또 스마트폰용 필름 생산 국내 1위 업체인 넥스플렉스도 사들였다. IB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뱅크데믹(은행+팬데믹)으로 시장에 위기감이 더욱 커졌지만 돈을 가진 기업들은 이를 호기로 삼고 있어 한계기업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활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M&A 활성화 대책 마련…업계 눈높이에는 못미쳐

고금리와 불황 등으로 한계기업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지면 나라 경제에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정부는 M&A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기업 M&A 규제를 개선하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확충하는 다양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일례로 지난 1일부터 공개매수자의 자금확보증명서 인정 범위가 확대됐다. 공개매수자는 자신의 자금조달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기존에는 예금 또는 단기금융상품(MMF 등) 보유증명서만 인정했다. 이뿐만 아닌 다양한 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금융회사의 대출 확약, 연기금 공제회 등 기관 투자가의 출자이행약정 등도 자금확보 증명서류로 인정키로 했다.


업계에선 추가적인 정책적 변화도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인 도입하려는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IB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승인 등 정부 승인을 공개매수의 조건 혹은 철회 사유로 할 수 있는 방안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개매수에 성공했지만, 정부 승인을 얻지 못해 M&A가 무산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수주식 강제매수제도(Squeeze-Out) 요건 완화 요청도 나온다. 소수주식 강제매수제도란 회사 발행주식 중 9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지배주주가 소수주주의 주식을 강제로 매입해 소수주주를 회사 경영에서 축출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는 회사 발행주식 중 9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지배주주만 소수주주의 주식을 강제매수 할 수 있는데, 업계에선 한도를 90%대로 낮춰줄 것을 바라고 있다. 현재보다 쉽게 상장폐지 또는 완전 자회사화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상장사 차입매수(LBO) 가이드라인 정비 요구도 있다. LBO란 외부 차입금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기업을 M&A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상 LBO 허용 범위가 불확실해 관련 분쟁이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때 코스닥·코넥스 상장법인의 자금 부담 완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M&A 리파이낸싱 대출 여력 확대 등도 M&A 활성화 방안으로 거론된다. 합병가액 산정 방식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여러 요구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목적은 하나다. 글로벌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들이 적시에 유연하게 사업 부문을 조정하고, 필요한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산업과 금융의 적절한 연결이다. 이수원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기업의 생존은 미래 전략산업의 먹거리 선점 경쟁에 달려있다"라며 "특히 기술 확보 등을 위한 해외 M&A 활성화에 산업과 금융 간 협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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