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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VESTORS]③“돈 말고 회사 얘기부터…피인수 기업 오너와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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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템임플란트 경영권 획득한 UCK파트너스 김수민 대표
대주주·회사 상황 파악 철저…이야기 듣고 또 들어
메디트 엑시트로 투자원금의 6배 수익 올려

편집자주한국 자본시장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어느 때보다 혼탁하다. 작전이나 반칙이 판을 친다. 그러나 외환위기부터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투자 세계를 개척해 개인 투자자들의 모범으로 떠오른 투자가도 많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자본시장의 전쟁같은 스토리와 그들의 철학, 실패와 성공담으로 돈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가치투자와 행동주의, 글로벌 '큰 손'으로 거듭난 국내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부터 사모펀드와 자산운용사를 이끄는 리더, 금융사 최고경영자 등 다양한 분야 고수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오스템임플란트 회장님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영권을 획득한 사모투자펀드(PEF) UCK파트너스의 김수민 대표를 만나 물었다. 쟁쟁한 외국계 PE들을 제치고 최규옥 회장을 설득한 비결이 궁금했다.




타인의 통점(PAIN POINT)을 알고, 잘 들어주는 사람

김수민 대표는 피인수 기업 오너와 절대 척지지 않는다. 돈 얘기부터 꺼내지도 않는다. 대신 컨설팅 경력을 살려 미리 그 회사에 대해 공부를 철저히 한다. 자신이 키운 회사를 팔지 말지 고민할 때 오너들의 심경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비싼 값에 팔고 싶기도 한데, 몇년 더 경영하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 김수민 대표가 손을 내민다. 지금 현재 상태로는 외부 도움 없이 혼자 경영하기는 너무 힘드니, UCK와 함께 5년 정도 더 경영하고 회사를 더 키워서 같이 엑시트(투자금 회수)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컨설턴트의 시각에서 각을 달리해 보여주면 대주주에게는 현재 매각 가격보다 누가 더 회사를 키워줄지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펀드들은 오너와 반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UCK는 컨설팅 회사 출신의 인력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분위기가 다르다. 비즈니스 이해도를 높이고, 오너를 외려 전문 인력으로 활용한다. 한 기업을 인수할 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70% 정도 인수하고 30% 정도는 기존 오너에게 남겨둔다.


중견기업에 가서 보면 늘 자본과 인력이 부족하다. 펀드가 자본을 가지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인력 쪽에서 고민이 남는다. 김 대표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멀리있는 사람도 데려와서 같이 일해야 될 판에 회사를 가장 잘 아는 오너를 나가라고 할 필요가 없다"며 "저는 항상 같이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잡음이 나는 경우도 물론 생긴다. 법률적으로 해결하면 명쾌하겠지만, 김 대표 스타일은 아니다. 계속 이야기를 듣고 설득한다. 그는 "오너들이 PEF가 오면 자신이 이룬 것을 다 빼앗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며 "가격 얘기만하고 내 사업을 하나도 모르는 것 같고, 회사가 이상해지는 것 같고 그렇다"라고 전했다. 그는 세상일이 '50대 50' '흑과 백'으로 나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80% 정도는 '회색의 영역'으로 둔다. 기존 오너를 이기려 하지 않고, 누르려 하지 않고, 누가 더 똑똑하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너는 자존심도 없냐'는 말도 한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생각한다 '딜소싱'을 잘하려면 오히려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고. 김 대표는 "연기금에서 돈을 받아서 투자를 잘하고 돈을 잘 벌어드리는 게 제 직업이지, 똑똑하다는 얘기 듣는 게 제 직업은 아니다"라며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일단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말했다.


김수민 대표가 오스템임플란트 측과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지난해 말에는 행동주의펀드가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매입을 시작하면서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됐다. 오너의 머릿속은 너무 복잡한데 그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글로벌 펀드들도 관심이 많은 미래가치가 큰 기업이다. 유수의 펀드가 매각을 권유했다. '우리는 큰 회사고, 당신 주식을 비싼 가격에 사줄 수 있다'는 얘기가 주를 이뤘다. 회사 이미지나 실추된 명예, 개인채무, 승계문제 등 오너의 고민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계획을 가진 펀드는 드물었다.


메디트를 경영하면서 치과 분야 이해도가 높았던 김 대표는 치과의사의 소개로 최 회장을 만났다. 펀드들이 주로 증권사 대표나 변호사 소개로 오는 반면, 김 대표는 최 회장 지인의 소개로 만난 셈이다. 메디트를 운영하면서 치과의사들과의 긍정적 유대를 넓혔던 것이 새로운 딜에 도움이 된 것이다.


중견기업 오너들은 일반적으로 자수성가로 힘들게 사업을 일구다보니 의심이 많고, 사업에 대한 애착도 크다. 자신이 일군 사업을 폄하하거나 돈 얘기부터 하면 두 번 보기 힘들다. 오너가 시큰둥하면 펀드들은 다시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대표는 계속 찾아간다. 대주주와 회사가 처한 상황을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하면 딜이 보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다들 안 판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닌 척 하는 것"이라며 "저는 딜이 없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신하면 계속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해당 기업 오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만남이 10번 정도 이어지면 오너가 먼저 "자네도 얘기 좀 해보라"고 한다. 이 때가 김 대표가 입을 여는 타이밍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UCK파트너스가 국내 임플란트 업계 1위이자 시가총액 3조원에 육박하는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영권을 확보한 비결이다.


꽃히면 파고드는 '꼴찌 감성' 보유자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김 대표를 두고 흔히 모범생일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중학교 시절에는 60명 중에 55등이었다. 그는 '꼴찌 감성' 보유자다. 당시 고3이었던 형만 챙기고 집에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놀러만 다녔다. 한참을 놀다보니 고등학교를 못간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벼락치기로 연합고사 커트라인을 겨우 넘겨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부터다. 김 대표는 누가 시켜서는 절대 안 한다. 하지만 목표가 생기면 정말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기본부터, 바닥부터 시작한다.


김 대표의 IB 경력 출발점은 컨설팅이다. 김 대표는 골드만삭스·베인앤컴퍼니를 거치며 글로벌 IB과 컨설팅 경험을 두루 갖췄다. 재무제표나 자본수익에 한정지어서 기업을 보기보다는 회사와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전체 산업의 흐름 속에서 본다. UCK에서 같이 일할 직원들도 컨설팅에 특화된 사람을 많이 뽑는다.


예를 들어 식음료 회사 인수를 검토한다면 매장 50개를 다 가본다. 고객 설문조사도 하고, 남들이 모르는 정보까지 샅샅이 수집한다. 그러면 오너를 만났을 때 얘기가 달라진다. 다른 PE들이 숫자 이야기를 할 때 그는 '00점을 지난주에 다녀왔는데'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부터 오너의 눈빛이 달라진다. 투자 조건 얘기는 미뤄두고 '너무 먹고 싶은데 그 지역에는 가맹점포가 없대요' 등 회장도 몰랐던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오너들은 김 대표와 더 긴 시간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이런 철저한 사전 조사는 투자의사 결정뿐만 아니라 딜 소싱에도 큰 도움이 된다.


김 대표의 성과는 하버드 MBA 연구사례로 쓰일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김 대표는 1호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글로벌 밀크티 브랜드 '공차'를 비롯해 웨딩홀 운영 업체 '아펠가모', 식자재 수입 유통기업 '구르메F&B', 건기식 유통 업체 '에프엔디넷' 등 총 8건의 바이아웃 딜을 성사했고, 6개 포트폴리오를 엑시트했다. 공차 딜로 투자 5년 만에 원금 대비 6배 수익을 벌어들였다. 미국 하버드MBA의 케이스 스터디로 다뤄질 만큼, 바이아웃 투자의 모범사례로 거론된다. 2호 펀드를 통해서는 메디트·오아시스마켓, 테라로사 브랜드로 유명한 학산 등에 투자했다. 이 중 메디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투자원금의 6배 수익을 내며 엑시트에 성공했다.


영어를 못해도, 펀딩을 못해도 '깡'으로 버텨

처음부터 김 대표가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김 대표가 오너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도 본인이 겪은 힘든 비즈니스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 들어갔다. 성과가 좋으면 MBA를 보내준다고 해서 3년을 죽도록 일했다. 그리고 1998년에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시작해 2000년에 졸업했다. 이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홍콩에서 일했다. 당시 골드만삭스에는 김 대표처럼 한국서 학교를 나온 '토종'은 없었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골드만삭스 홍콩법인에서는 한국 정부와 할 일이 많았다. 영어 능통자만 뽑다가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김 대표가 운좋게 채용된 것이다. 김 대표는 "남들은 30분이면 쓰는 메모를 5시간 걸려서 쓰고 퇴근하는 고통의 시절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괴로워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골드만삭스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는 직원이 아니라 한국말을 제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골드만삭스에서 근무 중 베인앤컴퍼니에서 다시 '러브콜'이 왔다. 2006년 파트너가 되고 5년 동안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담당했던 분야가 PE그룹이다. 이제 막 PE가 생길 때였다. 주로 외국계 PE가 많았고, 국내 PE는 바이아웃은 잘 다루지 않았다. 이 분야를 하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에 2011년 1월 베인앤컴퍼니를 그만두고 나와서 창업을 했다.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2013년 7월까지 '명함없는' 야인 시절을 보냈다. 치밀하게 기획했다고 생각했는데 펀딩이 쉽지 않았다. 같이 하기로 한 사람들은 다 떠나고 혼자 남았다.


망해도 어디가서 다시 컨설팅 못하겠느냐는 자신감으로 버텼다. 그러나 차도 팔고, 식구들에게 이제 지하철만 타고 다녀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까지 왔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장기전이다'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잘됐네'라고 생각하지만 고난의 길을 거쳐왔다. '정말 죽을 것 같다' 싶을 때는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다보니 2013년부터 일이 풀렸다.


그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베인에서 맡았던 PE그룹이 거의 시장을 다 독점하고 있어서 정말 가만 있어도 프로젝트가 들어왔다"며 "그래도 나온 이유는 오래 일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야인시절로부터 10년이 지난 2023년, UCK는 이제 투자 업계에서 인정받는 PE다. 그는 "금융시장 상황이 좀 더 나았다면 메디트를 8배로 엑시트 할 수도 있었겠지만 6배도 괜찮은 성과"라며 "특히 지난해에 출자자(LP)들이 유동성이 모자라 힘들어 했는데 우리가 메디트로 수익을 내니 너무 좋아해서 뿌듯했다"며 웃었다.


남의 돈을 맡아서 불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퇴근 후에도 업무 생각의 연속이다. 김 대표는 최근 귀 수술을 했다며 밴드를 붙이고 오늘도 전국의 공장을 누빈다. 김 대표의 치밀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더 큰 성장을 이룰 공장들이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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