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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꼬리가 몸통 흔들 숨은 차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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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 우발채무, 신종자본증권 등 늘어
공시 체계 정비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 높여야


숨어 있던 차입금이 말썽이다. 회계장부에 차입금이나 부채로 나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갚아야 하거나 갚지 않으면 큰 문제로 이어지는 차입금 말이다. 이 은둔의 차입금은 겉보기 수치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당장 기업이 직접적인 재무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이 최소의 자본으로 최대치의 자산을 보유하거나 사업을 하기 위해 레버리지(빚)를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사업을 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나 해외 계열사가 사업 자금을 빌리는 데 보증을 서주는 식이다.


대표 케이스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다. 축적된 자본이 많지 않은 개발 시행사나 SPC가 사업용 자금을 빌릴 때 PF 사업에 참여하는 상대적으로 우량한 건설사와 금융회사가 시행사에 신용공여를 제공해준다. 채무보증 외에도 자금보충약정, 유동화증권 매입 약정 등 종류가 다양하다. 우발채무는 경우에 따라 채무상환 책임이 발생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 PF 사업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면 채무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지만, 사업이 어려워져 시행사가 부실해지면 보증을 선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 숨어 있던 차입금이 갑자기 ‘짠’하고 얼굴을 드러내는 셈이다.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낮추려고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영구채)도 숨어 있는 차입금 중 하나다. 영구채는 이름 그대로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영구적이어서 회계상 차입금이나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자금이 필요한데 부채비율 등의 재무 수치가 더 악화하는 것을 꺼리는 기업들이 주로 발행한다. 대표적인 자본확충 수단인 유상증자는 대주주가 신규 자본을 투입하거나 제3자의 자금이 들어와 지분율이 희석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지만, 영구채는 그런 부담이 없다. 단지 투자자에게 약간의 이자를 얹어 주기만 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영구채는 실상 상환 강제성이 상당히 높다. 발행 후 3~5년 되는 시점에 대부분 상환이 이뤄진다. 정해진 시점에 조기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해 원리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이자비용이 수직 상승하는 페널티를 받기 때문이다. 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채권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돼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형국에 처한다. 만기를 계속 연장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5년을 넘기기 어렵다.


숨어 있던 차입금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투자자들이 받는 충격파는 상당히 크다. 믿었던 기업의 신용도가 빠르게 악화하기도 하고 투자한 주식과 채권값은 추락한다. 비슷한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하면 금융시장 전체가 요동치는 악순환에 빠진다.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부동산신탁, PF대출 보증, 유동화증권 등 부동산 관련 '그림자금융'의 규모만 지난해 9월말 기준 876조원에 이른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42%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신종자본증권과 코코본드 발행 잔액도 빠르게 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꼬리가 몸통을 세게 흔들고도 남을 규모다.


시장은 무한정 커지고 이곳저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숨은 차입금에 대한 정보공개 수준은 아쉽다. 대부분 소극적으로 우발채무나 실질 차입금 등을 열거하는 수준에 그친다. 공시 내용만으로 계약의 상세 내용이나 위험의 수준과 범위에 대해 가늠하기 어렵다. 정보 투명성은 시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 시장의 불안심리가 확산하는 것을 막아준다. 시장 규모에 걸맞게 공시 체계를 갖추려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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