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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Next]한국식 투자법 고수하다 큰 코…해외 대체투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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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차인 고집하다 비핵심지역 빌딩투자
한국 기관끼리 경쟁해 가격만 올렸는데 시장상황 역전
전문가들 "금리·코로나 탓만 하기 어려워"

"초대형 빌딩, 장기임차인, 군집성 투자 선호하는 한국식 해외부동산 투자가 부실 위험 키웠다"


최근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서 해외 부동산 부실 투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홍콩과 유럽, 미국 등 해외에서 터지는 한국 기업들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 부실이 단순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누적된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로 인한 불가피한 손실로 보기에는 투자 방식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투자 대상물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해외 부동산 고점에서 한국 기업들끼리 경쟁적으로 투자에 뛰어들어 매수 가격만 더 높여놓고 정작 엑시트(자금회수)에는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대형 기관이 투자했대"‥묻지마식 군집투자가 리스크 키워

24일 한 대형 기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불거진 해외 부동산 투자 부실에 대해 "한국 기관들은 투자를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인 투자 대상물의 기본적인 가치를 고민하기보다는 함께 투자하는 기관이 어딘지를 먼저 본다"며 "이런 방식은 투자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면피를 하려는 생각이 큰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형 운용기관이 투자한다고 하면 다른 한국 기관들이 우후죽순 몰려가 가격만 높여 놓았고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한꺼번에 같이 무너지게 된 형국"이라며 "현재 상황을 보면 5년을 더 버티면 되는데 너무 여러 기관이 모여 있어 대출 만기 연장을 위한 의견 합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렸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서 부각되는 해외 대체투자 리스크의 원인으로 한국 기관들의 투자방식을 지목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와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주요 증권사 26개 사가 투자한 해외 부동산의 규모는 총 15조50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를 부동산 용도별로 분리하면 오피스 비중이 50%(약 7조7500억원)로 가장 컸다.


이어 숙박시설(17%·2조6350억원), 주거용(12%·1조8600억원), 물류(7%·1조850억원) 등의 순이었다. 나라별로 따져보면 미국(7조2850억원)이 47%로 가장 많았고 유럽(26%·4조300억원), 아시아(12%·1조8600억원), 영국(8%·1조240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과 유럽(영국 포함) 지역만 통틀어 81%로 집계됐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대형사 9곳의 전체 자기자본 56조7000억원 가운데 해외부동산 관련 펀드·부동산담보대출·우발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달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낮은 금리와 우호적인 환율 여건에 힘입어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오피스 건물은 당시만 해도 수익률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부동산 투자 대상으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북미지역과 유럽에 재택근무가 확산해 오피스 수요가 줄어들었고, 설상가상 지난해 미국을 필두로 한 글로벌 긴축기조로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상환 부담도 커지며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올 하반기부터는 해외 대체투자 분야에서 투자 손실이 발생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가령 미래에셋증권이 28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해 중순위 대출에 나섰던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GFGC)는 보증인 파산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문제가 생겨 선순위 대출자들이 싼값에 매각하면서 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 이에 최근 펀드를 판매했던 시몬느자산운용과 미래에셋 계열 멀티에셋자산운용은 펀드 자산의 약 90%를 회계상 손실로 상각 처리한 상태다.


이지스자산운용도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를 통해 투자한 독일 트리아논 오피스 건물의 주요 임차인 데카방크가 임대차계약 연장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추가 손실을 막고자 건물 매각을 검토 중이다. 현재 일부 대주와 리파이낸싱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건물의 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추기 위한 자본금 추가 납입을 요구받고 있다. 일단 운용사가 회사 자금 150억원부터 투입하기로 했으나 이달 말까지 요구 금액을 못 채우면, 사실상 다음 달부터는 매각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부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터지기 전까지 한국 기관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가 과열됐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해외 부동산 투자 비딩(인수 후보자들 간 가격 경쟁으로 매각가를 높이는 방식) 장소에 가면 한국 투자자들끼리 모여있어 머쓱하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규모가 큰 트로피애셋(Trophy Asset) 또는 A등급 상업용 부동산도 아닌데 한국 사람들만 모여 경쟁적으로 매수 가격을 높였다.

썝蹂몃낫湲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국式 '빌딩 보는 눈'으로 해외 부동산 골라‥입주사 증발에 속수무책

'한국의 투자 시각'으로 해외 부동산을 고른 것이 부실 투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도심 지역 프라임급(최고 등급) 오피스 빌딩은 여전히 낮은 공실률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공실률은 급격하게 올라가는 데 한국 기관이 투자한 빌딩들은 주로 외곽에 위치한다. IB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한국은 초대형 건물, 이름 대면 알만한 기업, 장기임차인이 입주한 건물을 좋아한다"며 "문제는 유럽에서 그런 건물들은 도심이 아닌 교외 지역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유적이 많은 유럽은 층고제한으로 중심가에 고층빌딩을 지을 수가 없는데, 한국인들은 외곽에 있는 신축이면서 고층건물, 유명한 기업들이 장기 임차를 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투자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임차인이 나가려면 50억~100억원 정도의 위약금을 지불하고 나가야 하는데 투자 당시에는 임차인이 절대 안 나갈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입주 기업들이 증발했다.


단기 투자 방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관 투자기관 다수가 단기간의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투자 만기를 4~5년 정도로 짧게 설정했는데 이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투자 물건 가격이 추락한 상황에서 만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투자였다면 한국 투자자들의 손실 불안감은 지금보다는 약했을 것"이라며 "이 모든 한국식 투자 방식은 악수(惡手)가 돼 부메랑처럼 돌아왔다"고 진단했다.


B급 빌딩 투자한 한국‥최상 컨디션만 원하는 수요에 몰락

블룸버그 역시 최근 5년간 2급(second tier) 빌딩에 투자해 온 한국이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재택근무로 인한 회사 근무 공간이 축소되면서 기업들은 최상의 오피스를 찾아서 이동했다. 핵심 공간만 쓰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원하는 수요만 남았다. A급 빌딩에는 수요가 넘치지만 B급 이하 빌딩들은 엄청난 수리 비용과 암울한 매각 전망에 직면했다. 뉴욕 맨해튼에서부터 홍콩, 프랑스 파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B급 오피스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데 이런 건물에는 통상 한국 자본이 많이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자산운용 기관들은 주로 코로나19 이전 수년간 해외 사무용 빌딩과 위험한 부동산 대출에 익스포저를 늘렸다. 우호적인 환율 환경과 높은 수익률이 과감한 '묻지마 투자'를 부추겼다. 대체투자 시장 분석 업체 MSCI리얼에셋에 따르면 한국은 2019년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외부 투자자였으며, 그 해에만 130억 유로(18조50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진행했다.


한국 투자자들은 2017~2022년 사이 런던과 파리 금융지구를 위주로 90개 이상의 유럽 부동산을 각각 2억 유로(2800억원)가 넘는 가격으로 매입했다. 지난해 두 곳의 건물 가치는 20% 이상 하락했다. 현재 런던에서만 한국 기업이 소유한 대형 빌딩이 6개 이상 매물로 나와 있을 정도다. 1990년대 초 일본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아일랜드처럼 부실 부동산 투자를 한 국가 대열에 한국이 합류할 것이란 불편한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투자는 아마존과 같은 유명 기업이 장기 임대를 하는 건물을 좋아했고, 완벽한 위치나 건물의 친환경 등급보다는 누가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짚었다. 또 대형 건물들을 선호했고, 이 건물들은 구식이 됐을 때 개조에 더 큰 비용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썝蹂몃낫湲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국은 도심 공실률 제로인데?‥주거·생활·문화 차이

한국은 코로나 엔데믹(감염병의 주기적 유행) 상황에서 여의도, 강남, 광화문 등 한국의 주요 오피스 공실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지금 사무실이 없어서 난리"라며 "프라임급 오피스들은 거의 '미인대회' 하듯이 기업들을 줄 세워서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 부동산들은 여전히 높은 공실률에 시달린다.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투자 전문가들은 주거 및 생활문화의 차이를 꼽았다. 한국, 유럽, 미국을 놓고 봤을 때 미국이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근무로 복귀하는 '백 투 오피스(back to office·사무실 복귀율)' 비율이 가장 낮은데, 이는 출근 거리가 멀고 집이 넓어서 재택근무를 선호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도심에서도 20~30% 정도의 공실률이 관측된다.


한국은 자연스럽게 다시 출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해외는 여전히 재택근무 비중이 높다. 그나마 유럽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유럽은 만나서 얘기하는 문화가 있어서 미국보다는 '백 투 오피스'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부동산서비스업체인 CBRE에 따르면 지난해 5~6월에 진행한 조사 결과 한국에서 주 3일 이상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무직 근무자 비율은 약 85%로 미국 75%, 유럽 78%보다 높았다. 근무일 모두 사무실로 나오는 비중은 한국이 전체의 50%의 정도고 미국과 유럽은 대부분 20~30% 수준이다.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금융대란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아

투자전문가들은 해외 부동산 부실로 인한 국내 금융기관들의 위기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될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부동산 시장은 선별적, 순차적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도심이나 주변 지역에는 수요가 더욱 몰리고 외곽의 공실은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건물 가격이 내리고 임대료가 하락하면 시간차를 두고 공실이 채워질 것이란 전망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해외 부동산 부실 투자 사태가 금융대란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다만 가늘고 오래 가는 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 연기금 한 관계자는 "고통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전망도 있지만 약 10%의 부동산이 문제인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을 큰 카테고리로 볼 때 미국 부동산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주거 시장이 건재하고 상업용 부동산 중에서도 물류, 차별화된 프라임급 오피스들도 건재하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지만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미래는?‥발 빠른 개발업자들은 '용도변경' 시작

현재 뉴욕 등 주요 도시 상황을 보면 발 빠른 부동산개발업자들이 비핵심 오피스 빌딩의 용도를 바꿔 나가고 있다. 수요가 없는 오래된 오피스빌딩들을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고 가격이 높아진 멀티패밀리(아파트) 등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유럽에선 장기간 비어버린 대형 빌딩을 라스트마일(고객에게 배송되는 마지막 단계) 물류창고 등으로 바꾸는 시도들도 진행 중이다.


호텔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현재 한국 상황을 보면 미래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미리보기' 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동안 여행수요가 중단되면서 한국의 호텔들은 고급 오피스텔로 개조를 진행했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한국의 호텔 부족 현상이 부각되고 있다. 반면 오피스텔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며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향후 2~3년 내 오피스텔 과잉공급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오피스 빌딩 수요가 줄어 공급 과잉이지만, 수많은 용도변경이 일어나면 향후 오피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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