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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가뭄의 단비 PEF, 감당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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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다 엑시트(투자금 회수) 시킬지 걱정이다."

국내 한 대형 사모펀드(PEF)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자금 조달이 어려운 국내 대기업들이 사모펀드 자금을 연이어 끌어다 쓰는 것을 두고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가운데 PEF 자금은 신용도가 낮거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다. 다만 이걸 갚을 때가 문제가 될 수 있다. PEF의 눈높이에 맞춰 엑시트를 시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어서다.


더구나 단기간에 너무 많은 PEF 자금이 산업 전반으로 흘러드는 건 건강한 자본의 순환으로 볼 수만은 없다.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는 정해진 기간에 원리금을 갚으면 된다. PEF 자금 회수 과정은 좀 다르다. 기업가치를 올리고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강도 높은 경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우려가 업계를 주도하는 대형 펀드 관계자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이차전지 산업이다. 특히 이차전지 소재 기업들이 PEF 운용사들로부터 설비투자용 자금 조달에 한창이다. 이차전지 양극재 업체인 A기업은 PEF로부터 약 5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B대기업 계열사인 C기업도 최근 한 PEF와 총 1조원 한도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계약을 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에도 PEF 자금으로 1조원 이상을 조달했다.


이차전지 기업에 투자한 PEF 운용사들은 앞으로 투자 기업이 성장할 경우 주식 매각 등으로 자본 차익을 기대한다. 문제는 현재 이차전지 관련 업체들의 기업가치가 고평가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자금 회수 시점에 PEF가 만족할 만한 수익률이 나오지 않으면 기업가치나 주가 부양을 위한 압박이 고통스러운 수준까지 높아지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이차전지 분야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주요 대기업과 PEF들의 의기투합도 자주 볼 수 있다. 조 단위 투자 유치는 물론, 해외 공동투자,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사모대출펀드(PDF)의 국내 상륙도 활발하다. 최근 블랙스톤·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칼라일그룹과 더불어 미국의 4대 자산운용사로 꼽히는 아폴로가 국내 PDF 시장에 진출했다. 경제 불확실성 탓에 여신 부담이 커지면서 사모대출 시장이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로 급성장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사모대출은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가 자금을 모아 운용사가 기업에 제공하는 대출이다.


사모펀드와 손을 잡고 PDF를 활용하는 것은 고금리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자 비용을 아끼면서 설비투자도 진행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은행 대출 등과 달리 전략적 컨설팅을 동반하는 PEF와의 협력이 유리한 면도 있다. 하지만 은행·증권 등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유동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펀드 자금만 주요 산업에 몰리는 쏠림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PEF 업계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자금 흐름이 치우쳐 있다는 건, 건강한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해외 시장 개척과 신사업 투자에 한시바삐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돈의 출처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와 당국의 시각에선 조금 더 멀리 볼 필요가 있다. 미래 경제의 근간이 될 주요 산업에 자산 유동화, 담보대출, 인수금융, 구조화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사모 자금이 쏠린다. 해외와 비교해 국내 사모투자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훗날의 유동성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박소연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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