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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위기의 벤처 생태계, 무너지게 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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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Runway)'는 날아오르기 위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탁 트인 길, 즉 활주로라는 뜻이다. 패션 업계에선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누비는 길이다. 벤처·스타트업 업계에서 런웨이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기업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 자생할 수 있는 수명을 뜻한다. 런웨이가 1년 남았다는 말은, 1년 후에는 보유한 현금이 없다는 뜻이다.


벤처캐피털(VC)의 개점 휴업 상태와 스타트업 보릿고개가 길어지고 있다. 출자기관(LP)들이 일부 자금을 풀고는 있지만, 투자실적이 좋은 VC와 최상위 벤처기업에만 돈이 몰리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관측된다. 고금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시장도 연착륙하나 싶더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터지면서 투자심리가 다시 얼어붙었다.

전쟁 등에 얼어붙은 투심
VC·스타트업 보릿고개 계속
자본시장 전체의 배려 필요

고금리 환경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전망이어서 채권 가격과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해 기관들의 기존 투자 회수가 어렵게 됐다. 출자기관들의 유동성이 개선되기를 기대했지만, 마이너스 손실을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기금·공제회, 금융회사 등 출자기관들이 벤처 투자 여력이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투자 환경 회복도 요원하다. 우량 벤처기업들도 정식으로 펀딩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특히 지난 1년 반 정도는 기업공개(IPO)의 암흑기였다. 벤처기업들은 적절한 시점에 상장해서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시장에서 촉망받던 벤처기업들도 상장에 실패했다.


벤처·스타트업 투자는 콩나물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그냥 다 빠져나가는 것 같고 물 주는 것이 딱히 소용이 없는 일 같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콩나물은 쑥쑥 자라있다. 정부 지원과 넘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쑥쑥 자라던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는 벤처 암흑기가 시장의 예상보다 더 길게 이어지면서 활주는커녕 언제 추락할지 모를 아슬아슬한 런웨이를 걷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출자자, 운용사, 벤처·스타트업 간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한 기존 주주들이 합심해서 보릿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양식 정도는 적당히 나눠줘야 한다. 그러려면 LP들은 VC에, VC는 기업에 런웨이를 조금이라도 늘릴 말미를 줘야 한다. 벤처·스타트업이 끝 모를 불황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줘야 한다. LP들이 자금 회수를 서두른다면 전체적인 벤처투자 생태계가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콩나물을 키우려면 덮어놓고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벤처·스타트업은 훗날 우리 경제를 이끌 주역이다. 투자관점에서는 더 큰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창업자의 배임이나 횡령 등 부도덕한 이슈가 아니라 불가항력의 외생변수로 인한 일시적 부진이라면 자본시장 전체가 합의와 여유를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VC와 벤처·스타트업의 전략적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외부에 내세울 히스토리가 짧은 VC들은 기관 출자 공모전에 나가면 떨어지기 다반사겠지만, 생존 전략과 더불어 경기 반전 이후까지도 모색해야 한다. 벤처·스타트업도 스스로 연구개발을 지속할 부분과 단시간 내 상업화가 가능한 부분을 전략적으로 구분해 생존 런웨이를 늘려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그다음 K-산업을 이끌 기업은 이런 자본과 전략, 사회적 합의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박소연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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