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포함한 FI, 강제매각 수순 돌입
최대 주주 SK스퀘어, 콜옵션 포기 '11번가 손절'
6년 전 '몸값' 2.7조, 현재는 5천억도 장담 어려워
한때 '한국의 아마존'을 꿈꿨던 1세대 e커머스 플랫폼 기업 11번가가 인수합병(M&A) 매물로 '강제 소환'됐다. '몸값'이 6년 만에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국민연금 등 주요 투자기관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투자 원금 회수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세입자가 집 팔아 보증금 회수하는 격"
11번가의 모기업인 SK스퀘어는 최근 재무적투자자(FI)의 동반매도요구권이 발동돼 11번가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11번가의 FI는 국민연금과 MG새마을금고, H&Q코리아로 구성된 나인홀딩스컨소시엄이다.
컨소시엄은 2018년 5000억원을 투자해 11번가의 지분 18.18%를 취득했다. 국민연금이 3500억원, H&Q 코리아가 1000억원, 새마을금고가 500억원을 투자했다. 매각 주관사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삼정KPMG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FI는 2023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가 불발될 경우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80.3%)까지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요구권을 약속받았다. 또한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FI가 먼저 자금을 회수하는 '워터폴(waterfall) 조항'도 약속을 받았다.
매각이 성사될 경우 투자 원금에 연이율 3.5%를 더한 약 5500억원에 우선권이 부여된다. 매각대금이 5500억원을 넘긴다면 SK스퀘어는 차액을 가져간다. 이보다 낮을 경우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SK스퀘어는 80%가 넘는 지분을 사실상 '손절'했다.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 것이다. "설마 포기하겠느냐"라는 세간의 전망을 뒤집었다. 자금 여력이 없는 데다 현재 11번가의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주주에 대한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5500억원을 투입할 가치가 없다고 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집으로 비유하면 SK스퀘어가 전세 보증금을 못 돌려주겠다고 한 것"이라며 "세입자는 집을 팔아 보증금이라도 건지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11번가의 '몸값' 2.7조→1조→5000억
6년 전만 해도 11번가의 '몸값'은 2조7000억원이었다. 이 정도 가치로 산정해 투자금액 5000억원을 환산한 지분율이 18.18%였다. 이때 시장에서는 오히려 "헐값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2017년 11번가의 거래액은 9조원 규모로, 단일 플랫폼 기준으로는 업계 1위였다. 쿠팡(5조원)의 2배 수준이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의 '비전 펀드'로부터 4조원을 투자받은 쿠팡, 포털 기반으로 급성장한 네이버의 양강 구도로 업계가 재편되면서 11번가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22년 기준 시장 점유율은 쿠팡이 24.5%로 1위, 네이버가 23.3%로 2위다. 11번가는 7%로 4위였다.
11번가는 2020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냈으며 이 기간 누적 영업 손실은 2307억원에 달한다. IPO도 당연히 불발되면서 매각을 추진했다. 지난해 10월 1조원 정도의 금액을 제시한 싱가포르 기업 큐텐과 협상 테이블을 차렸으나 SK그룹이 지급보증을 해달라는 요구에 난항을 겪다가 결렬됐다. 그 사이 11번가의 '몸값'은 더욱 추락했다. 투자자의 원금 회수마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11번가의 인수 후보로는 전략적투자자(SI)와 기존 e커머스 강자들이 거론된다. 이미 한 차례 협상이 불발된 큐텐, 글로벌 e커머스 1위 아마존, '알리익스프레스'로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중국의 알리바바그룹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빅2(네이버·쿠팡) 중심의 승자 독식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현재의 11번가는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다"며 "원금 회수도 절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11번가 입장에서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e커머스 기업에 인수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