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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없이 이종기업 간 직거래…바이오M&A에 뛰어든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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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산업 특수성·PEF 경계감에 '직거래 활발'
돈 필요한 바이오·미래 먹거리 확보 기업 '윈윈'
'바이오 시간' 견뎌야, 진정성 중요…사익추구 경계

편집자주‘생산시설 확보가 곧 미래 수익이다.’ 한동안 침체했던 한국 제약·바이오 시장이 다시 들썩인다.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대기업 집단과 ‘현금부자’ 중견기업들이 국내외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이다. 국내에서는 몸집이 커진 1세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대규모 현금 투하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다음 단계로의 성장을 위해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특히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연구개발(R&D)이 핵심인 제약·바이오 산업 특성상 단기간 최대 수익을 원하는 사모펀드(PEF)보다는 기업 간 M&A가 활발하다. 대기업의 자본과 바이오 기업 기술이 만나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그리는 가운데 일부 M&A는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의 엑시트(자금회수), 경영권 유지 등을 위해 진정성 없이 이뤄지면서 국내 바이오산업의 건설적 진화를 가로막고 있다.
자금압박에 1세대 바이오 줄줄이 매물로‥PEF 없이 이종기업 간 협력 특징

국내 1세대 바이오 기업들은 이제 조원 단위 규모로 몸집이 커졌다. 필요한 자금 규모는 점점 늘어나는데 자본시장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끝없는 R&D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돈 먹는 하마, 밑 빠진 독’으로 불린다. R&D가 핵심이라 전문지식 없이는 2세 승계도 어렵다. 바이오 초기 기업의 경우에는 벤처캐피털(VC) 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몸집이 커진 바이오 기업에 기약 없이 자금을 쏟아부을 PEF는 없다. 여기서 신성장 동력을 찾는 ‘현금부자’ 중견기업들이 국내 바이오 산업의 주연으로 나섰다.


최근 OCI그룹과 한미약품 그룹의 통합, 오리온그룹의 레고켐바이오 인수 등 굵직한 M&A 2건이 잇따라 성사됐다. PEF 없이 기업 간 M&A가 이뤄지는 것은 최근 제약·바이오 분야 M&A의 큰 특징이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초기 기업에 VC 투자를 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이 되면 PEF가 들어가야 하는데 R&D 기간이 길고 언제 매출이 날지 모르는 분야는 손대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MBK파트너스가 한국앤컴퍼니를 상대로 공개매수 진행하는 등 적대적 M&A 사례를 지켜보면서 펀드에 대한 경계심이 늘어난 것도 기업 간 거래를 거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PEF는 만기가 있어서 현금부자 기업을 더 선호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PEF의 사후관리 시스템이 일반기업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자금압박에 시달려 왔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의 경우 금리 인상 여파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M&A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R&D 비용 마련을 위해 기존에는 투자 시장에서 돈을 끌어왔는데 그게 힘들어진 것도 최근 활발한 M&A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M&A로 자금 조달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며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필요한 바이오 회사와 ‘미래 먹거리’를 위해 바이오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바이오 산업의 특수성도 기업 간 M&A를 부추기고 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R&D가 핵심인 제약·바이오 산업에 진출하려면 기술을 가진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확보할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M&A다. 이미 기술력이 검증됐거나 성과를 내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태양광 사업이 주력인 OCI와 식품 사업이 핵심인 오리온은 주력 분야가 다른 기업과 M&A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종 결합’으로 불렸다. 현금흐름이 우수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2022년 말 기준 OCI는 현금성 자산 1조2460억원을 보유 중이며 오리온 역시 61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이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상장 제약사 63곳 중에 현금성 자산 3000억원 이상을 보유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한미약품과 레고켐바이오도 마찬가지다. 남는 돈을 R&D에 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국내 톱 제약사 중 하나이며 레고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ADC)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회사다. 사업을 확장하려는 비(非) 바이오 기업과 자금을 수혈하려는 바이오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M&A 시장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는 기업들이 바이오 시장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딜이 성사됐다고 분석한다. 정경수 삼일PwC M&A센터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웰에이징(well-aging) 욕구는 갈수록 커지고, 필연적으로 바이오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래 산업으로 꼽힌다"며 "OCI와 오리온 모두 이미 신사업으로 바이오를 내세운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상대 회사들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했다.


바이오 산업 ‘축적의 시간’ 기다릴 수 있는 진정성 필요…경영권 방어, 창업주 엑시트 목적 경계해야

최근 M&A 트렌드를 살피면 바이오 산업이 과열될 조짐을 보인다. 블룸버그 리그테이블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합계 국내 바이오 분야의 M&A 거래금액은 50억달러로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50% 증가했다. 전체 M&A 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648억달러로 37% 쪼그라들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2023년 글로벌 바이오 M&A 시장 규모는 1910억달러로 전년 대비 34.5% 증가했다. 바이오를 포함한 전체 시장 규모는 1년 전과 비교해 32.2% 감소한 2조4950억달러였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PwC는 올해 바이오 M&A 시장이 23%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약·바이오 시장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업종의 경계를 넘어선 ‘이종 결합’이 활발해질 경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다른 산업에 있던 기업이 바이오 업계 특유의 속도와 호흡을 견뎌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신약 개발 자체가 확률이 높지 않은 데다가 개발 과정에서 여러 부침을 겪을 텐데 M&A 상대 기업이 바이오 특유의 ‘축적의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 살펴볼 포인트"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M&A 이후 주가가 휘청일 수도 있다. 그는 "그런 우려만 해소된다면 M&A 활성화로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이 퀀텀 점프(단계를 뛰어넘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이뤄진 M&A 딜 중에선 창업주가 지분 대부분을 매각한 메디포스트, 대주주 지분 맞교환으로 주목받은 OCI·한미그룹의 케이스는 제약·바이오 업계가 반기는 모범사례는 아니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M&A라기보다는 사익추구 측면이 크다는 시각이다. 반면 오리온과 레고켐바이오 딜의 경우 바이오 업계에서 발전적 M&A로 인정받는다.


강지수 BNH인베스트먼트 파트너(전무)는 "레고켐바이오 대표가 인수 직후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신약 개발에 매진하기 위해서 M&A를 선택했다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좋은 선례로 남는다면 앞으로도 다양한 M&A 시도와 바이오 진출 기업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전무는 "레고켐의 창업자 김용주 박사는 모든 바이오 업계 분들이 존경하는 분"이라며 "글로벌에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기업이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는 주주 서한에 "제 평생을 ‘오직 신약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 이번 전략적 제휴가 제 오랜 꿈을 실현하는 데 있어 앞으로 남은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세계적인 회사로 우뚝 서는 그날까지 열정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M&A 시장에서 바이오 업종의 활황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정KPMG의 제약·바이오 산업 M&A 전문가인 고병준 상무는 "올해는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 중인 바이오테크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M&A가 추진될 것"이라며 "상속 이슈 해결을 위해 M&A 시장에 나오는 제약 산업 매물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래먹거리’바이오에 돈 퍼붓는 재계…‘삼바 천하’에 롯바가 M&A로 맹추격

중견기업들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M&A를 꾀한다면 대기업들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M&A를 통해 신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래 가치가 높게 점쳐지는 바이오 산업에 대한 국내 대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본격화했다. 현재 국내 5대 그룹 중에 현대차를 제외한 삼성, 롯데, SK, LG 등은 모두 제약·바이오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삼성과 롯데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며 신성장 바이오 부문에 그룹의 사활을 걸었다.


제약·바이오 투자로 유명한 IB 고위 관계자는 "주요 그룹들이 모두 바이오 산업에 뛰어들었다. 롯데가 뒤늦게 바이오를 한다고 해서 다들 약간 의아해했는데, 지금은 사실 롯데가 삼성보다 더 잘할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매물이 나오자 롯데가 잽싸게 인수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며 "제약·바이오는 규모, 그리고 노하우의 싸움이다. M&A 한 번 잘하면 그룹의 미래가 바뀐다"고 덧붙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원톱’으로 여겨지던 이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한국 바이오산업 전체로 보면 경쟁하며 성장하는 긍정적 구도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재작년 글로벌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던 인력 90% 이상을 승계하며 바이오 의약품 생산과 관련한 BMS의 전문성을 흡수했다. 시러큐스 공장은 3만5000ℓ 규모의 항체의약품 원료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생산량 자체는 크지 않다. 하지만 롯데는 2200억원에 이 공장을 인수하면서 바이오의약품 생산 노하우와 전문인력을 단번에 확보했다.


미국서 노하우를 흡수한 롯데는 이제 국내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30년까지 인천 송도에 3개의 바이오 플랜트를 건설해 총 36만ℓ 항체 의약품 생산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1공장은 2025년, 2공장은 2027년, 3공장은 2030년 준공 예정이며, 2034년 전체 완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고 글로벌 M&A를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을 키우는 이유는 사업성이 확실한 고성장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바이오산업 전체 시장규모는 2020년 기준 11조3183억달러(약 1경5184조원)에서 2026년 16조1919억달러(약 2경1716조원)로 연평균 6.1%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매출이나 영업이익 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건 삼성이다. 재작년 매출 3조원을 넘어섰고 증권사 전망치를 보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시가총액은 50조원대에 이른다. 삼성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확대와 바이오의약품 자체 개발이라는 양대 축을 세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5공장 건설이 완료되면 연 78만4000ℓ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재 보유한 연 60만4000ℓ 능력도 이미 세계 1위다. IB 업계에선 삼성이 이에 그치지 않고 볼트온(동종기업 인수) 전략을 위한 M&A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SK 역시 제약·바이오 산업 투자를 꾸준히 진행해 온 그룹이다. BMS의 아일랜드 소즈 공장, 미국의 CDMO 앰팩, 프랑스 이포스케시 등을 줄줄이 인수하며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다만 SK그룹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다소 분산된 측면이 있다. 신약 개발(SK바이오팜), CDMO(SK팜테코), 백신(SK바이오사이언스) 사업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 스코어는 타 그룹보다 조금 뒤처져 있지만 한국 바이오산업의 산파 역할을 한 곳은 LG다. LG화학은 삼성보다 20년가량 먼저 바이오 사업을 시작했다. 다만 시점이 너무 빨랐고 1997년 외환위기가 왔다. LG화학은 외환위기 직후 제약·바이오 사업을 LG생명과학으로 분사해 수익 극대화를 중심으로 사업전략을 수정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했다. 그 당시 LG에서 수백 명의 바이오 인재들이 나왔고, 50명 이상이 창업을 하면서 현재 한국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역군이 됐다.


최근 한국 바이오 업계를 들썩이게 하는 레고켐바이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펩트론, 알테오젠, 파멥신, 수젠텍 등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의 대표이사들이 모두 LG 출신이다. 이후 2017년 LG화학이 다시 LG생명과학을 흡수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LG화학은 지난해 미국 항암제 기업 아베오 파마슈티컬스를 7011억원에 인수하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에 다시 힘을 싣고 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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