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
닫기버튼 이미지
검색창
검색하기
공유하기 공유하기

[시시비비]'잃어버린 30년'을 넘어선 일본의 그림자

  • 공유하기
  • 글씨작게
  • 글씨크게

일본 도쿄 증시가 최근 34년 만에 역사적 고점인 3만9000선을 돌파하면서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워런 버핏이 지난해 일본 5대 종합 상사 지분을 대폭 늘린 것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동학개미들까지 미국증시보다 일본증시로 몰려들고 있다.


썝蹂몃낫湲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해외에서는 일본이 드디어 ‘잃어버린 30년’이란 거대한 늪에서 탈출했다며 온통 찬양하는 분위기지만 정작 일본 내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경제 호황이 돌아왔으면 당연히 고점을 경신해야 할 내각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7~18일 일본 내 18세 이상 성인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지지율은 14%로 지난달보다 7%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사실상 내각 운영이 불가능한 수치다.


내각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유는 서민의 삶이 극한 지경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 6일 발표한 일본 노동자들의 지난해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33년 만에 가장 가파른 감소세다. 반대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3.8%가 뛰어 42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처럼 극심해진 주식시장과 체감경기 간 간극을 두고 엔저가 만들어 낸 착시 때문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 주식의 급등세는 2012년 아베노믹스 선포 이후 10여년간 이어져온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이 지정학적 변수와 맞물려 빚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무제한적 양적완화로 풀린 시중 자금은 됴코 증시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로 흘러 들어갔고, 사실상 국가가 지수 상승을 보증해주게 된 일본 증시는 버핏과 같은 안전 지향 국제투자자들까지 대거 끌어들였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으로 반도체 공급망의 대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일본도 이러한 공급망 이동 수혜국으로 떠오르면서 체감경기와 달리 일본 증시는 잃어버린 30년 고점을 뚫는 데 성공했다.


다만 금융정책과 지정학이 함께 만든 버블은 꺼지기도 쉽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 경제는 1980~1990년대 거품경제기와 달리 저출산·고령화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이 전망한 일본의 인력부족 문제는 앞으로 불과 16년 뒤인 2040년부터 전체 산업에서 인력이 25% 이상 모자라게 될 정도로 심각하다.


그동안 풀린 자금들이 주식과 부동산 가격에 다시 과도한 거품을 일으키고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면서 소득과 소비는 뒷걸음질치면, 결국 잃어버린 30년을 또다시 맞이할지도 모르는 상황인 셈이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도 만에 하나 전시 상황으로 비화되면 경제 목줄을 위협하는 칼날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러한 일본 주식호황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일본을 15년 간격으로 뒤따라가고 있는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그나마 정책자금이 증시를 통해 기업으로 향하는 일본과 달리 아예 부동산 가격 부양에 매몰되고 있는 한국은 증시호황과 같은 착시효과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보다 훨씬 혹독한 경제빙하기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 정치권은 아직 너무나 여유로운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