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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작에만 7년…피눈물 나, 나이든 사람들 다 죽었어"[주가조작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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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⑴동양 사태 피해자 서원일씨 인터뷰
증권 관련 집단소송, 허가만 6년이나 걸려
"나 같은 피해자 없으려면 소송제 바뀌어야"

"그거참, 이제 와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주 피눈물 나는 이야기를 뭐가 듣고 싶은데요."


지난 13일 아시아경제의 취재 요청에 '동양그룹 사태'의 피해자 서원일씨(67)가 전화 너머로 울분을 토해냈다. 서씨는 '동양 사태'의 증권 관련 집단소송의 대표당사자(원고)다. 소송 진행에 대한 질문에 그는 한숨부터 쏟았다. "한 사건을 정말 이렇게 오래 끌 줄 몰랐다 이거예요. 그때 나이 좀 있는 영감들은 다 죽었다고."


2013년 터진 동양 사태… "10년 넘게 끌 줄은 전혀 예상 못 해"

동양 사태는 2013년 동양그룹이 부도 위험성을 숨기고 동양증권을 통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팔아 투자자 4만1000여명이 1조7000억원대 피해를 본 사건이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려고 회사채와 CP를 무리하게 발행한 게 화근이었다.


전문 건설업자인 서씨도 증권사 직원의 권유에 따라 돈을 맡겼다. "건설업 특성상 1.5~2% 금리의 지방채를 매입해야 했어요. 매입 채권 대부분을 증권사에 맡겼는데, 처음 맡긴 곳이 동양증권이었고. 그러다가 증권사 직원이 '사장님, 저희 회사채 이율이 높으니까 매입하시는 게 어떠세요. 3개월 단위로 이자가 들어와요'라고 하니까 채권을 산 거지."


이후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만기가 찾아온 회사채 빚을 갚지 못하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금융감독원은 3만5754건의 투자 사례 중 약 67%를 불완전판매로 인정했다.


약 4억원을 투자한 서씨 등 피해자 1254명은 2014년 6월 동양 증권을 인수한 유안타증권을 상대로 1350여억원 규모의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증권집단소송은 여러 피해자 중 한 명 이상이 대표당사자가 돼 진행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재판 결과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에게도 효력이 미치기 때문에, 일반 소송과 달리 소송 개시를 위한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50대이던 서씨가 6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집단소송은 열리지 못했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과 2017년 서울고법은 "일부 원고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허가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항고, 재항고 끝에 2018년 대법원은 "일부가 구성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다른 대표당사자가 그 구성원으로 남아 있는 이상 집단소송을 허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서울고법이 소송을 허가하자, 이번엔 유안타증권 측이 재항고했다. 대법원은 2020년 이를 기각하고 허가 결정을 확정했다.


서씨는 당시가 피해자들의 기대감이 가장 큰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기다리던 허가가 났으니까. 피해자 대부분이 '이제 됐다. 재판이 시작되고, 배상받을 길이 열리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렇게 2021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증권집단소송 1심 첫 재판이 열렸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뒤 7년 만이었다.


돌아온 것은 소송비 영수증… "금융 피해자들, 더는 눈물 흘리는 일 없길"

하지만 소송 결과는 피해자들을 두 번 울렸다. 지난해 1월 1심은 "증권신고서 등에 중요사항을 거짓으로 적거나 뺀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 1월 2심도 이 같은 판단이 옳다고 봤다.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증권신고서를 읽고 당시 동양의 위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취지다.


소송이 장기화하면서 변호사 비용과 인지대(법원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 등 소송비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번 소송은 원고와 청구금 등 규모가 큰 만큼, 인지대만 해도 1심이 5000만원, 2심이 6750만원에 달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서씨 측은 "대표당사자는 개인이 아닌 모두를 위해 소송을 수행하고, 별도의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소송비는 소송 제외 신고를 하지 않은 구성원 전체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소송 허가 결정 고지를 현실적으로 받지 못하고 소송 제기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구성원에게 패소에 따른 소송비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씨는 집단소송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기간 자체가 너무 길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결론을 낼 소송이었으면, 허가하는 데 시간을 왜 그렇게 질질 끌었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을 할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본 소송 기간이 조금 길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소송을 허가해 주는 절차까지도 그렇게 오랫동안 쥐고 앉아있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 이거예요. 지금 1~2심 인지대 값만 해도 얼마냐고요. 이렇게 웃기는 이야기가 어디 있어요?""


썝蹂몃낫湲 2013년 10월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동양사태 피해자 대집회'에서 한 피해자가 머리를 감싼 채 괴로워하고 있다.

그는 증권사와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의 책임을 함께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이 한 번 정도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증권사랑 은행이 그런 짓을 안 하죠. 최근에 터진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서도 똑같은 짓을 한 거 아니에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망하기 전까지는 이상 없다'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팔잖아요. 제가 2013~2014년에도 금감원, 금융위를 아주 불나게 쫓아다녔어요. 피해자들 좀 어떻게 해달라고. 구제 좀 해달라고."


서씨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피해 당사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다 죽었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고 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금융 피해자들이 더 이상 눈물 흘리는 일이 없게 해주세요."


한편 현재현 전 회장은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았고, 2021년 만기출소했다.


편집자주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부당이득 합계 7305억원)의 '라덕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2023년 4월24일)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 시장에 실효성 있는 피해자 방안은 없습니다. 소송밖에는 답이 없으나 비용 부담과 피해입증 어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라덕연 게이트'로 형사처벌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높은 금전적 제재를 도입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의미가 크지만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려면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엄정한 제재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증권자본시장부 특별취재팀은 해외 자본시장 선진국의 제도를 살펴보고, 증권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시장의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봅니다. 또한 지능적·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투자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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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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