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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첫발 뗀 '밸류업'에 포이즌필은 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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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에 경쟁이 없다면 회사는 결국 썩는다." 최근 만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경영권 방어 수단인 포이즌 필(Poison pill·신주인수선택권)을 국내에 들여와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에 대비해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싸게 지분을 살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포이즌 필은 이름 그대로 상대방의 지분 확보 의지 자체를 꺾는, 치명적인 독약이다.


재계는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된 한국 기업 수가 4년 새 10배가량 늘었다는 통계 등을 근거로 내세워 포이즌 필 도입을 주장한다. 실제 지난달 정기주주총회 기간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을 앞세운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표 대결'을 통해 사외이사 추천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했고, 주주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기업들도 나왔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정책' 등 관련 논의가 이 같은 변화를 이끌었다.


재계는 거세진 행동주의 펀드를 두려워하며 그 어느 때보다 포이즌 필 도입에 목소리를 내지만, 현시점에서 포이즌 필은 국내 자본시장 전체에 독약이 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시대상 대기업 집단의 내부 지분율은 60%에 달했다. 적대적 M&A가 성사되기 절대적으로 어려운 구조다. 포이즌 필이 도입된 미국과 프랑스에선 총수일가 우호지분이 이같이 높은 기업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정상적인 M&A마저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이제 막 밸류업이 첫발을 뗐다. 국내 상장사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5배에 불과해 "기업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3.6배)과 일본(1.4배), 대만(2.1배)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포이즌 필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의 가치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경영 방어 조치를 확보해 소액주주보다 경영진과 지배주주를 위할 게 자명해서다.


자본시장 선진국에선 다양한 안건을 놓고 무엇이 주주이익과 기업 성장에 도움이 될지 면밀히 따진다. 무리한 주장은 자연스럽게 배척된다는 의미다. 총수일가의 경영권 걱정은 지나친 기우일 뿐이다. 지난달 삼성물산 주총에서도 대규모 배당을 요구한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연합은 표 대결에서 완패했다. 재계는 국내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었던 적대적 M&A를 걱정할 게 아니라, 첫발 뗀 밸류업의 정착을 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에 힘쓸 때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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