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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는 지금]⑪에이유엠벤처스 "여성·문과·해외파…비주류의 벽, 이렇게 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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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25개 미팅, 창업자 1000명 넘게 만나
'고피자' '피치스' '시프티' 등 '시드투자 전문가'
"당장 빛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편집자주벤처캐피털(VC)은 자본시장의 최전방에서 미래 산업의 주축이 될 초기 기업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탓에 VC 업계도 부진을 겪고 있지만 될성부른 기업을 물색하고 키우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업력과 노하우를 축적한 초대형 VC에서부터 신생 VC까지 다양한 투자사를 만나 투자 전략과 스토리를 들어본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도 아니고 공대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데 벤처캐피털(VC)을 한다고?"

썝蹂몃낫湲 엄세연 에이유엠벤처스 대표가 27일 서울 강남구 공유오피스 스파크플러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엄세연(37) 에이유엠벤처스 대표가 과거 한 VC의 면접에서 받은 질문이다. 당시 이미 수년간 VC 심사역 경력을 쌓은 엄 대표에게는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엄 대표는 "지금 돌아보면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신기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남성이 압도적인 곳이 바로 VC업계다. 엄 대표는 "'형님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한 곳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폐쇄적인 업계 특성상 '형님, 동생'으로 요약되는 네트워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국VC협회에 따르면 회원사 224곳 중 현재 여성 대표가 있는 곳(공동 대표 포함)은 단 7곳뿐이다. 3.1%의 비율이다. 여성 VC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전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있다. 나머지 남성 대표들의 주류는 SKY와 카이스트(KAIST), 포스텍 등 국내 5개 대학의 공대 출신이라는 것이 엄 대표의 설명이다. 반면 엄 대표의 출신 성분은 '마이너 그 자체'다. 여성, 문과(경제학), 해외파(미국 미시간대) 등 비주류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3%의 벽을 뚫은 비결 …일주일에 미팅만 25개

엄 대표는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를 거쳐 스파크랩에서 심사역을 맡으며 처음 VC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빅베이슨캐피털과 알로이스벤처스를 거쳐 2년 전 에이유엠벤처스의 공동대표로 영입됐다. 에이유엠벤처스는 최앤리 법률사무소가 국내 로펌 최초로 설립한 VC다. 현재 최철민 공동대표가 경영을 총괄하고, 엄 대표는 투자를 총괄하고 있다. 심사역 자격을 갖춘 인력은 엄 대표 혼자이기 때문에 사실상 투자업무는 전담하고 있다. 최근 투자환경 악화로 신생 VC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에이유엠벤처스는 프로젝트 펀드 2개와 블라인드펀드(투자대상을 정하지 않고 모집하는 펀드) 1개를 운용하는 등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엄 대표의 경력과 평판을 믿고 투자한 것이다.


올해로 심사역 경력 10년이다. 그간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 조롱과 무시를 넘어 업계 3% 수준인 '여성 VC 대표'가 될 수 있었다. 남들보다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시기와 질투가 심한 곳이 VC업계다. 인맥도 없고, 비주류 출신인 엄 대표는 차별화를 위해 실력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거의 매일 5개, 일주일에 25개 이상의 미팅을 진행하며 창업자를 만났다"고 했다. 식사 시간을 빼면 거의 미팅 시간이었다. 좋은 회사를 많이 발굴하기 위해서였다.


일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무시나 편견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엄 대표는 "만나보지 않은 회사인데 다른 곳에서 투자받았다는 소식을 듣는 게 가장 속상한 일"이라고 했다. 다른 곳이 먼저 발굴해서 투자했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창업자를 많이 만났다. "세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간 만난 창업자가 1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VC라면 으레 떠오르는 골프도 아직 손댄 적이 없다. 소수 인원과 종일 보내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아껴 더 많은 창업자를 만나는 것이 낫다는 계산에서다.


시드 투자는 결혼과 같아…업종보다 창업자가 중요

가장 관심이 많고 주특기인 분야는 시드 투자다. 시드 투자는 벤처나 스타트업의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사업을 시작했으나 아직 수익은 보지 못하는 '죽음의 계곡'이라는 불리는 단계다. 엄 대표는 "후기단계 투자도 해본 적은 있지만, 시드 투자가 훨씬 재밌는 것 같다"며 "창업자와 유대관계를 갖고 같이 성장해나가는 매력이 있고, 조언한 방향으로 사업을 잘해서 기업 가치가 올라가면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시드 투자자와 창업자는 매우 끈끈하다. 때로는 가족보다도 연락을 많이 할 정도다. 내용은 다양하다. "술 먹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데 어떻냐"는 식의 카톡이 오기도 한다.


엄 대표는 시드 투자에 대해 "이혼이 예정된 결혼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결혼할 때 배우자를 신중하게 고르듯 투자를 할 때 1순위가 창업자이며, 투자금을 회수할 때 이별한다는 얘기다. "창업자의 결이 저랑 맞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으로는 레퍼런스 체크를 많이 한다"고 했다. 처음엔 학교 동문을 시작으로 평판을 확인한다. 도덕성에 민감한 우리나라 특성상 사생활도 중요한 체크포인트다. 한순간에 나락 갈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VC 경력이 쌓일수록 체크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져 평판 체크가 점점 수월해졌다.


창업자만 괜찮다면 업종 자체는 가리지 않는 편이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고피자'가 대표적이다. 엄 대표가 초기 단계에서 발굴한 스타트업이다. 고피자에 기관투자가로 투자한 것은 엄 대표가 처음이었다. 엄 대표는 "당시 다녔던 회사의 반대도 심했고, 음식료 프랜차이즈는 일반적으로 VC가 투자하는 업종이 아니었다"며 "(푸드테크 투자의) 물꼬를 튼 케이스"라고 했다. 투자 전 기업가치(밸류)가 50억원이었던 고피자의 현재 밸류는 1600억원에 달한다. 푸드트럭으로 시작한 고피자는 인도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해외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내부수익률(IRR)은 101%에 달했다.


고피자뿐만 아니라 시프티, 피치스도 엄 대표가 일찌감치 알아보고 투자한 기업이다. 각각 IRR이 188%, 64%였다. 시프티는 통합 인력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LA와 서울을 기반으로 설립된 피치스는 자동차 문화를 대변하고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피치스 투자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슈프림이 롤모델이라고 설명했는데 슈프림이 뭔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VC 대표가 되기 전 좋은 기업을 발굴했지만, 투자를 끝내 하지 못한 기업도 부지기수였다. 윗선에서 투자 결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줄 것…잘 버텼으면"

엄 대표는 "그렇게 날린 기업이 너무나 많았다"며 "주변에 좋은 기업 정보를 나눠준 게 많다 보니 별명이 브로커였다"고 했다. 시드 투자 단계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기업이라 소중한 정보였지만 직접 투자하지 못해 나눈 것이다. 그러나 노력의 대가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정보를 가져간 분들이 주변에 좋게 얘기를 해줬다"며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고, 발굴도 잘하는데 본인이 투자를 못해서 정말 안타깝다는 식의 이야기가 퍼진 것"이라고 했다. 좋은 평판을 듣고 연락이 왔고, 알게 된 인맥도 제법 많았다. 그녀를 에이유엠벤처스의 투자총괄 대표로 영입한 최앤리 법률사무소도 그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여성 VC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버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상상 이상의 일을 겪거나 황당한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성과가 좋고 실력으로 인정받다 보면 언젠가는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상처받을 때마다 떠났으면 저도 여기 없을 거예요. 당장 빛나지 않는다고 절대 실망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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