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보다 더 살 확률, 중대질병 등 고려해야
자식은 더이상 노후대책 아냐…성인자녀 리스크 대비 필요
“100세까지 사는 시대라는데 노후자금은 몇억원이나 있어야 할까요?” 노후설계 관련 강의활동을 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사는 집을 제외하고 몇억원의 노후자금을 준비해 퇴직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 인생에서 재산이 제일 많은 시기는 퇴직 직전인 50대라고 한다. 통계청의 ‘2024년 3월 기준 50대 가구 보유자산 현황’을 보면 가구당 총자산은 6억1400만원이고 여기에서 가구당 평균부채 1억300만원을 뺀 순자산은 5억1100만원이다. 50대 후반에 순자산을 이만큼 보유하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순자산 중 거주용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가액이 4억3700만원이란 점이다. 이걸 제외한 가용 순금융자산은 8400만원. 이 돈으로 어떻게 노후 30~40년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남은 건 부동산인데 저성장·고령화 시대에서 부동산 가격이 제대로 유지가 될지도 걱정이다. 선진국처럼 연금준비가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노후자금 몇억원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노후설계의 발목을 잡는 세가지 착각에 빠지게 되면 그 몇억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세 가지 착각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평균수명(2022년 기준 82.7세)에서 지금 나이를 뺀 만큼 더 살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첫번째 착각이다. 5명 중 1명이 살아남을 확률, 즉, 20% 생존확률 연령까지 살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2020년 박유성 고려대 교수가 추계한 바에 따르면 올해 45세가 되는 1980년생의 경우 100세 생존확률은 남성이 20.2%, 여성이 21.9%였다. 일단 100세 인생을 염두에 두고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
수명은 늘어났는데 퇴직연령이 이전보다 빨라지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취업컨설팅 업체 잡코리아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40세 이상 직장인이 체감하는 평균 퇴직연령은 51.8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초반에 퇴직하고 100세까지 5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돈도 돈이지만 뭘 하면서 살 것인가는 더 큰 문제다. 이 때문에 선진국의 직장인들은 퇴직 후에도 자신의 형편에 따라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우선 모아둔 노후생활비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 생각을 한다. 반면 노후생활비에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취미·사회공헌 활동 등을 하면서 약간의 용돈벌이를 찾는다. 우리나라도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수명이 70~80세이던 땐 ‘공부-취업-은퇴’라는 삶의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100세 시대엔 ‘공부-취업-공부-재취업’의 순환형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두번째 착각은 죽는 날이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오래 살면서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정도를 앓으면서 돈 문제, 외로움 등으로 고생하다 가는 사례가 많다. 수명이 늘면서 그런 사례는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미국, 일본에서 ‘퇴직 후에 생활비가 줄었는가’에 대한 앙케트조사 결과를 봐도 줄지 않았다는 비율이 30~40%를 차지한다. 의료·간병비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사하면 ‘줄지 않았다’는 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일본 내각부에서 주요국의 60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당신은 지금 건강한가’라고 질문한 조사 결과, 선진국의 고령자들은 60~70%가 ‘건강하다’고 답했다. 반면 우리나라 고령자들은 ‘건강하다’는 대답이 40%였다. 중대질병보험 등에 가입해 대응책을 마련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세번째 착각은 아직도 자식이 자신의 노후대책이란 생각이다. 가장 심각한 착각이다. 2023년 미국 CNN방송이 세계 주요국의 소득 대비 자녀양육비 비율을 발표했다. 한국이 1위였다.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결혼비용, 주택마련자금, 사업자금 지원 등 자녀 관련 지출은 끝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에도 자립을 못 하고 생활비를 부모에 의존하는 캥거루족도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일자리가 없어 그냥 쉬는 20·30세대 캥거루족이 68만명이고 성인 전체로는 313만명에 이른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오죽하면 성인 자녀 리스크라는 말이 나왔을까? 지금 부모에게 시급한 것은 자녀의 경제적 자립 능력을 키워주고, 자신들의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