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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민주주의와 정부 회계감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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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근본 원칙 중 하나는 국민의 동의 없이 재정을 운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원리를 ‘재정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영국의 재정민주주의는 1215년 대헌장(Magna Carta)에서 시작돼 약 650년 후인 1866년, 영국 감사원(National Audit Office)의 설립으로 제도의 틀을 갖추게 됐다. 당시 도입된 ‘조세법률주의’, ‘지출법률주의’, ‘통합예산’, ‘독립감사의 의회보고’라는 재정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은 오늘날 우리나라 재정 시스템의 토대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나라 제헌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유진오 박사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 “국가의 총수입과 총지출은 예산으로 편성한다”, “행정부에서 편성한 예산은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심계(회계감사)위원회에서 검사한 결산은 국회에 제출된다”는 원칙을 헌법에 담고자 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재정운용이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본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재정운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 정부는 2011회계연도부터 발생주의·복식부기 회계제도를 전면 도입했다. 기존의 현금주의 회계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언제, 어디에, 얼마가 쓰였는지”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발생주의 회계는 지출이 당기 소비를 위한 비용인지, 아니면 미래에 기여할 자산인지까지 구분해 제공한다. 이러한 정보는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평가하고 향후 정책 결정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정부는 국가결산보고서를 통해 발생주의 회계 정보를 포함한 재정운용 결과를 매년 국회와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왔다. 이는 국민의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를 명확히 밝히는 책임성의 기반이 된다.


우리나라 재정관리는 법률적으로도 잘 정비돼 있다. ‘국가재정법’은 정부의 결산보고서가 국가회계법에 따라 작성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회계법’은 현금주의 기반의 ‘세입·세출 결산’과 발생주의 기반의 ‘국가재무제표’를 국가결산보고서에 포함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헌법 제99조는 “감사원은 세입·세출 결산을 매년 검사하고 대통령과 차년도 국회에 그 결과를 보고한다”고 규정하며, 감사원의 독립성과 역할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재정정보의 질적 평가를 포함한 의견을 명확히 표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현재 감사원의 회계검사는 결산보고서에서 계산상의 오류와 회계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 규정된 ‘결산 검사’의 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발생주의·복식부기 회계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부의 재정정보는 양적·질적으로 크게 변화했다. 이에 발맞춰 감사 역시 단순한 ‘검사’가 아닌 독립‘감사’를 통해 재정정보의 품질과 신뢰성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미 많은 선진국의 최고감사기구들은 회계검사가 아닌 감사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영국의 국립감사원(National Audit Office), 미국의 회계감사원(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호주의 국가감사국(Australian National Audit Office), 캐나다의 연방감사원(Office of the Auditor General) 등은 독립적 감사 의견을 통해 정부 재정정보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있다. 이는 국민과 국회가 재정 정보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재정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결산 과정에서 생산된 회계정보에 대한 질적 평가가 필수적이다. 감사원의 역할이 계산상의 오류를 넘어 정보의 신뢰성을 국민에게 보증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결산 과정이 재정관리 혁신에 부합하는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감사원이 독립감사를 통해 국민과 국회에 신뢰받는 재정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의 사례를 거울삼아 우리도 재정민주주의를 한층 더 발전시킬 때다.


박성진 연세대학교 글로벌행정학과 부교수/IPSASB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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