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주주충실의무 실효적 정착 시급
일률적 금지보단 유연한 분할제도
중견·중소기업 성장동력 고려 필요
일반주주의 권익을 훼손하는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자회사 중복상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와 연성 규범을 조화시킨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다.
남길남 자본시장 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5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열린 '중복상장 쟁점과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궁극적으로 지배주주 중심의 상장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며 "중복상장에 관계없이 지배주주로 인한 이해충돌 해소, 일반 주주 보호 원칙 구현을 위한 현실적 방안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통한 국내 시장 개선 방향이 제시됐다. 홍콩의 경우 1990년대 중반 가족기업의 중복상장이 난립하자 1997년부터 자회사 상장 신청 전 신청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한 개 사업으로 중복 상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을 명시했다. 또한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분할 자회사 주식의 현물배당이나 신주 우선 배정권을 부여해 자회사 분할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보장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등 연성 규범으로 상장기업 간 지분 관계 해소를 유도했고, 중복상장 자회사 일반주주의 모회사 대상 기업가치 제고 압박을 지속했다. 그 결과 2014년 324개(9.5%)였던 중복상장 자회사 수는 2025년 216개(5.6%)로 감소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역시 2000년대 초 사베인즈옥슬리(SOX) 법 제정과 상장 규정 강화로 기업지배구조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남 연구위원은 "매력적인 기업을 유치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상장 규정 책임"이라며 "세계적으로 신생 테크기업의 안정적 경영지배 요구 증가와 투자자 그룹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요구 모두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법 개정으로 등장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원칙이 실효적으로 정착된다면 연성 규범의 설계가 가능하다"며 "신규상장 심사에서 시작해 기존 중복상장 구조의 점진적 해소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유관기관은 중복상장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주주 보호 원칙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하나인 것을 두 번 상장했다면 중복상장으로 투자자들이 이해한다고 판단하고 있고, 지배-종속 관계가 성립되는 수직적 지배 관계라면 하나의 단일체로 볼 수 있다고 논의를 설정했다"며 엄격한 심사 필요성을 밝혔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본부장보는 "선진 시장이 중복상장이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기업이 주주를 위해 노력을 하고, 기업과 주주는 한 몸이라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며 "주주의 이익을 확실하게 보호하고, 주주의 전적인 동의를 얻어올 수 있느냐를 중심으로 상장심사가 이뤄질 예정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복상장 자체가 아닌 경직된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제는 중복상장 자체가 아니라 한국의 경직된 분할제도가 주주에게 충분한 선택권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며 "정책의 방향도 중복상장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성장과 자본조달 수요를 존중하면서 기존 주주가 자회사로 이동하거나 자회사 성장에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유연한 분할제도를 도입하는데 맞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장기적으로는 현존하는 중복상장 자회사들의 완전 자회사화 촉진이 바람직하다"며 "모든 기업의 자회사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중복상장 추진과정에서 이사들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하에 일반주주들에게 그 필요성 및 전체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이유를 충실히 설명하고, 주주총회에서 소수 주주의 다수결 제도를 통해 승인받는다면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성장 동력을 고려한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상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중견·중소기업 계열사에 대해서는 중복상장 심사를 제외하거나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획일적 규제보다는 자회사 독립성과 상장을 통한 신규 자금 조달의 필요성 등 개별 기업의 상황을 고려해 중소기업의 성장 동력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 좌장을 맡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서로 다른 시각에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필요한 논쟁"이라며 "중복 상장을 줄여야 하고, 무조건 허용하면 편법들이 계속 난무하니까 기준과 원칙에 대해 앞으로 논의를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