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공개매수 부담 커져…리스크 확대
대형 PEF '신중 모드'…중소형 거래 경쟁↑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에서 조(兆) 단위 '빅딜'이 주춤한 사이, 5000억원 내외 미드마켓 거래가 상대적으로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투자 대기자금(드라이파우더)은 여전히 쌓여 있지만, 대형 거래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운용사들이 보다 신중한 접근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성사되거나 추진된 인수합병(M&A)거래의 대부분은 1조원 미만의 '미드마켓' 거래다.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중 '빅하우스'로 꼽히는 IMM PE가 최근 진행한 시지바이오 인수 건도 6000억원(지분 51% 인수) 수준이다. 대형 외국계 운용사 KKR이 인수하는 SK이터닉스도 2500억원(지분 31.%) 규모다. 그나마 1조원 남짓으로 거론되는 엠앤씨솔루션 매각에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일 뿐 PEF 운용사들은 아직 적극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국내 PE 중 지난해 조(兆) 단위 거래가 이뤄진 경우는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의 나노H2O(전 LG화학 워터솔루션 사업부)가 유일하다.
정책 환경 변화에 회수 불확실성↑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회수 환경의 변화가 꼽힌다. 상법 개정으로 중복상장이 사실상 제한되면서 상장사 인수 시 공개매수 등 추가 비용과 절차 부담이 커진 것이다. 그간 국내 기업 다수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였고, PE들도 인수할 때 일부 경영권 프리미엄만 얹어주면 실제 시가총액 대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같은 방식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업계에서는 상장사 인수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개별 기업 단위 정책 리스크도 회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인수가 대표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어피니티EP가 SK렌터카를 보유한 상태로 롯데렌탈을 확보하면 시장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에 기업 결합을 불허했다. 롯데그룹에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책정한 점도 문제로 꼽혔다. 거래가 난항을 겪으면서 롯데그룹은 시급한 자금 융통에 차질이 생겼고, 어피니티EP에서는 민병철 대표가 회사를 떠났다. 달라진 정책 환경 속 대형 딜의 리스크를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사회적 시선도 엄격…'신중론' 앞서
여기에 '빅딜'을 맡을 만한 대형 사모펀드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도 이전보다 엄격해졌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투자·회수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지면서 당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도 빨라졌다. 대형 운용사들이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관망 기조를 택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배경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수익을 내는 것만큼이나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며 "대형 하우스일수록 '괜히 튀지 말자'는 기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수금융 시장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감지된다. 금융사들이 대체투자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운용사 접촉을 늘리고 있지만, PEF들은 높은 차입 부담과 회수 불확실성을 고려해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과거처럼 공격적인 레버리지를 활용한 대형 인수보다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중소형 거래나 구조화 투자에 집중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중견 PE 파트너는 "최근 인수금융 측에서 PE를 접촉하며 자금을 융통하라고 영업하지만 운용사들은 다들 신중한 분위기"라며 "인수금융을 제공하는 측도 막대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거래가 줄어 아쉬움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여력은 충분…미드마켓 활성화 기대감
업계에서는 투자 여력은 아직 충분한 만큼, 미드마켓 중심의 투자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펀드 조성 규모는 커졌지만 투자 집행이 지연되면서 대형 PE들도 미드마켓에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정KPMG의 '2026 아시아태평양 PE 투자 트렌드와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드마켓(글로벌 기준 1500만~5억달러) 거래 비중은 2025년 하반기 32%에서 지난해 상반기 45%로 확대됐다. 지난해 상반기 아시아태평양 펀드레이징 규모는 954억달러(약 144조원)로 상반기 기준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반면 투자 규모는 643억달러로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여기에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중 대체투자 영역에 할당되는 35조원 역시 국내에서 집행돼야 하는 만큼 분주하게 투자처를 찾을 것으로 점쳐진다. PE업계 관계자는 "출자자(LP)들도 세컨더리딜(운용사 간 거래)이 활발해 회수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구조의 거래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호하고 있다"며 "중소형 매물의 옥석 가리기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