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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韓 가상자산 시장, 갈라파고스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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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근황을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표정이다. 업황이 좋으면 취재원의 표정이 밝다. 이야깃거리도 늘어난다. 요즘 여의도 증권가를 가면 이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표정도 좋지 않고 전해줄 업계 이야기도 없다고 한다. 단순히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 가격이 너무 내려가서일까.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도다. 설계도가 있어야 현장에서 직접 집을 만드는 이들이 방향성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설계도 없이 사업자들이 나무를 베어서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의 설계도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여러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통과 가능성도 요원하다. 지방선거 이후 22대 국회는 후반기 원 구성을 앞두고 있다. 관할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구성도 바뀐다. 구성이 바뀌면 곧 국정감사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예산정국이다. 적어도 올해 12월까지 논의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회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가상자산 설계도 마련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기본법 없이 '하지 말라'는 얘기만 한다. 새로운 서비스는 승인해주지 않아 사업계획을 번복하기 일쑤"라고 말한다.


시장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 문제가 대표적이다. 국내 주식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도 폐지하는데,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과세한다고 하니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당국과 국회의 무관심으로 정작 피해를 보는 건 국내 사업자들이다. 외국에 거점을 둔 거래소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활용한 20배 레버리지 선물 상품을 출시해도 우리 정부는 제재하지 못한다. 과세도 못 한다. 투자자들은 혁신이 없는 국내 거래소를 떠나 외국 거래소로 빠져나가게 된다.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해외로 넘어간 가상자산 규모가 지난해에만 200조원이 넘는다고 보고 있다.


규제 사각지대를 틈타 외국 자본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장면이 재연될 수 있다. 20여년 전 론스타 사태처럼 말이다. 이미 국내 사업자 지분을 노리는 외국 자본이 등장했다. 공공성을 이유로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고 하자 국내 거래소 지분 일부가 외국 거래소로 넘어갔다.


국내 사업자를 키워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정부는 과세를 통해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고 당국이 걱정하는 자금세탁 방지도 충분히 가능하다. 자금이 국내에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미 사업자까지 생겨난 가상자산 시장을 없앨 순 없다. 집에 문제가 있다면 설계도를 만들어 다시 진단해야 한다. 랜드마크처럼 만들도록 돕는 게 정부 역할 아닐까.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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