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장 외국 기업 중 두번째 규모
용인클러스터 1기 팹 등 국내 설비투자 박차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 수요예측에 공모 물량의 7배가 넘는 주문이 몰렸다. 최대 40조원대 자금을 조달하는 초대형 상장을 앞두고 월가가 한국 인공지능(AI) 메모리 대표 기업에 뜨거운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성사되면 미국 증시에 데뷔한 외국 기업 가운데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상장으로, 글로벌 자본시장이 K반도체의 가치를 정면으로 평가하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9일 반도체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수요예측에는 신주로 발행될 최대 1779만주의 7배인 1억2453만주를 웃도는 주문이 접수됐다. 청약 대금 기준으로 약 1715억달러(약 258조원)에 육박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 글로벌 롱온리 펀드와 기술 섹터 전문 펀드, 국부펀드, 아시아 투자에 특화한 글로벌 투자자 등 다양한 성격의 기관투자가가 대거 참여했다고 전했다. 전직 오픈AI 연구원이 설립한 미국 헤지펀드 등 주요 기관 3곳은 최대 70억달러(약 10조7000억원) 규모의 인수 의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이끄는 대표 기업이라는 시장의 평가가 청약 열기로 입증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흥행에 힘입어 SK하이닉스 ADR은 10일(현지시간) 나스닥에 상장해 임시 거래를 시작한다. ADR은 해외 기업 주식을 현지 예탁기관에 맡기고 미국 은행이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증서로, 미국 투자자가 달러로 직접 사고팔 수 있다. SK하이닉스 ADR 1주는 보통주 10분의 1주에 해당한다. 이번 상장을 위해 전체 발행 주식의 약 2.5%인 최대 1779만주가 신주로 발행된다.
당초 조달 목표는 최대 290억달러(약 43조원)였으나 최근 주가 하락으로 규모가 줄어들 전망이다. 전날 종가인 주당 207만6000원 기준으로 약 245억달러(약 37조원) 수준이다. 이대로 확정돼도 미국 증시에 데뷔한 외국 기업 가운데 2014년 알리바바(250억달러)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최종 조달액은 공모가에 따라 달라진다.
조달 자금은 전액 국내 설비투자(CAPEX) 재원으로 쓰인다. 글로벌 AI 수요 확대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한 만큼 생산능력 증대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3대 메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10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곳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이다. 잔여 클린룸 5개와 추가 인프라 구축을 위한 21조6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가 의결되면서 사업 비용은 단일 팹 기준 역대 최대인 31조원으로 불어났다. 기투자분 4조3800억원을 제외한 26조6200억원이 앞으로 투입될 것으로 추산되며 클린룸 오픈 시점도 기존보다 3개월가량 앞당긴 2027년 2월로 잡았다.
지난 4월 착공한 청주 P&T7에는 19조원가량이 들어간다. P&T7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어드밴스드 패키징 전용 팹이다.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장비 도입에도 12조원이 소요된다. 부족한 재원은 영업활동 현금흐름과 차입 등으로 충당할 방침이다.
이번 상장은 SK하이닉스가 연초 공언한 순현금 100조원 확보 목표 달성을 앞당기는 동시에 만년 저평가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압도적인 HBM 시장 점유율과 실적에도 주가수익비율(PER)이 6.2배에 머물러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해외 경쟁사 평균(선행 PER 7.2배)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미 증시에 상장된 마이크론 샌디스크 등 피어 그룹과 동일한 시장에서 평가받게 됐다"며 "밸류에이션 매력과 이익 규모 기술 우위를 고려할 때 기업가치를 재평가받을 절호의 기회"라고 진단했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이번 상장은 HBM과 메모리 기술 개발 투자가 확대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도 ADR 상장을 검토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자금 흐름이 좋아지면 현재 TSMC 등에 외주하는 첨단 패키징 등 부족한 영역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D램 분야 주도권도 더 강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상장을 계기로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최 회장은 10일 오전 뉴욕에서 열리는 상장 기념식에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등 주요 경영진과 참석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기술 경쟁력과 성장 전략을 직접 피력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올해 초 SK하이닉스의 HBM 성장기를 다룬 저서 슈퍼 모멘텀에서 "하이닉스는 지금보다 10배는 더 커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미국 체류 기간 엔비디아 테슬라 등 빅테크 경영진과 연쇄 회동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최 회장은 지난 2월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HBM과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지난달 황 CEO 방한 때도 협력 관계를 재확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