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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점심 약속 깨자 부회장 한국 급파"…2000조 굴리는 큰 손들, 들여다보니[기금·공제 대해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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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연기금·공제회 자산, GDP의 3분의 2
"CIO 짧은 임기·좁은 인력풀 문제" 지적
"외부 입김에 취약" 지배구조는 문제
증시 급등락에 비중 왜곡…배분 원칙엔 물음표
해외 투자 확대, 자금 이어 조직도 밖으로

편집자주연기금과 공제회가 자본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연기금과 공제회는 국민의 노후보장(연기금)과 회원들의 자산증식·복지확대(공제회)라는 기본적인 차이 이외에도 자산 규모, 투자 전략, 조직 구조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국내외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줄이기도 한 연기금·공제회에 대해 심층 분석해 본다.

#수년 전 글로벌 투자은행(IB) 한 곳이 한국 자산운용 부문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미국 뉴욕에서 예정된 해당 은행 고위 관계자들과의 점심 약속을 취소했다. 상당한 결례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은행은 '국민연금을 달래라'라는 특명을 부여해 본사 부회장을 한국으로 급파했다.


커진 덩치만큼이나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연기금·공제회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연금 1500조원, 한국교직원공제회 85조원, 사학연금 30조원, 대한지방행정공제회 33조원, 군인공제회 24조원, 공무원연금 12조원, 경찰공제회 8조원. 국내 주요 연기금·공제회 7곳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공시한 운용자산을 합치면 약 1700조원이다. 올해 상반기 수익까지 반영하면 200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2663조3000억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운용 성과도 역대급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8.82%의 수익률을 올려 2000년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올해도 5월 말 기준 26.18%를 기록 중이다. 다른 기관도 다르지 않다. 사학연금이 상반기 23%대, 교직원공제회가 2분기 연환산 18.4%, 공무원연금이 5월까지 15.6%의 수익률을 냈다.


다만 이들의 절대적인 위상, 절대 수익률만으로 이들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상법 개정과 의결권 행사 확대, 최고투자책임자(CIO) 인선 진통이 잇따르면서 '어디에 투자하느냐'만큼이나 '누가 결정하느냐'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내외 증시가 급등락을 거듭하는 사이 자산군 간 성과 격차도 벌어졌다. 대체투자 시장은 예년만큼의 호황이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오래 지켜온 자산배분 비율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시장에 맞춰 조정할 것인지가 기관마다 최대 현안이 됐다. 해외 자산 비중은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사모펀드(PEF)와 사모대출, 인프라 등 대체투자에서 '좋은 딜은 현장에서 나온다'는 판단이 굳어지면서 자금을 글로벌 운용사에 맡기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 조직 자체를 현지로 옮기는 흐름도 나타났다.


아시아경제가 7개 연기금·공제회를 들여다본 결과, 올해와 내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거버넌스와 리밸런싱, 해외로 압축됐다.


 의결권부터 CIO 인사까지…더욱 커진 '거버넌스' 중요성


올해 가장 크게 부각된 축은 거버넌스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부터 의결권 행사 방향 사전공개 범위를 지분율 5% 이상 기업의 전체 안건으로 넓혔다. 반대율도 23%대까지 올라 국내 자산운용사 평균(8.2%)의 세 배에 육박했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행보는 다른 기금·공제회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과 맞물리며 연기금·공제회가 단순한 자금 공급자를 넘어 기업 지배구조에 관여하는 국면으로 들어선 셈이다.


내부 거버넌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학연금은 전범식 전 CIO가 수협중앙회 자금운용본부장으로 옮기면서 생긴 공백을 백주현 전 공무원연금 CIO로 채웠다. 국민연금 차기 기금운용본부장 후보군에도 전직 연기금·공제회 CIO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경찰공제회는 지난 6월 강승오 전 신한투자증권 본부장을 CIO로 선임하며 2년8개월간 이어진 공백을 채웠다. 공백기 동안 주식이나 채권 어디에도 투자하지 않은 대기성 단기자금 비중은 21.5%까지 올랐다.


배경에는 짧은 임기와 좁은 인력 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연기금·공제회 CIO 임기는 대체로 2년에 성과에 따라 1년 단위로 연장하는 구조다.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 전임 CIO가 24년, 호주 오스트레일리안슈퍼 전임 CIO가 20년을 재임한 것과 대비된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투자 결정 과정에서는 재무 정보만이 아니라 인적 교류와 네트워킹으로 얻는 정보도 주요한 변수가 된다"며 "한국처럼 CIO 교체가 잦으면 운용사 입장에서는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해외 운용사들과의 미팅에서도 수시로 나오는 얘기"라며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은 유동성공급자(LP)들 얼굴이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느냐'라고 만날 때마다 묻는다"고 전했다. 기금 운용의 기본 철학은 장기 투자인데 정작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책임자는 짧은 임기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임기의 길이는 투자 성격과도 맞물린다. 그는 "임기가 짧으면 투자 철학이 단절되고 리스크 관리 체계도 흔들린다"며 "특히 대체투자처럼 성과가 드러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자산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후임이 바뀌면 전임자가 추진한 전략은 결실을 보기 전에 뒤집혀 투자 실행의 연속성도 끊기기 쉽다"고 덧붙였다.


이런 구조는 시장 전체의 투자 쏠림을 키우는 리스크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대체로 국내 CIO들은 임기를 마치고 나면 다른 기관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입장이 되는데, 대세와 어긋나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결정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하면 다 같이 실패했다는 명분이라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홀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가 실패하면 아예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을 전후해 연기금·공제회가 해외 부동산에 일제히 뛰어들었다가 손실을 떠안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관계자는 "규모와 성격이 확연히 다른 기관들이지만 자산운용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인사 과정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PEF 운용사 대표는 "모든 기관이 '국민과 회원을 위한다'며 '성과 중심'을 앞세우지만 투자 수익률이 과연 최우선 가치로 평가받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며 "이사장 인사, CIO 인사 시즌 때마다 정치권에 줄을 대는 사람부터 넘쳐난다"고 했다. 해외 기관들이 이사회 중심의 독립적인 구조를 갖춰 정권 교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투자공사(KIC)의 차기 CIO 선임 절차는 투명성 논란 속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면접을 앞두고 특정 인사 내정설이 돌면서 2005년 기관 설립 후 처음으로 공모가 무산됐다.


원칙이냐 유연성이냐…'리밸런싱' 본격 시험대


국민연금은 의결권만이 아니라 자산 배분에서도 올해 내내 화두의 중심에 있었다.


국민연금은 상반기 국내주식 기계적 매도, 즉 리밸런싱을 1~6월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목표 비중을 넘어선 자산을 자동으로 덜어내는 원칙을 잠시 멈춘 것이다. 수익률 중심의 운영을 지속하는 한편 시장 충격도 최소화하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154조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차익을 챙긴 반면 연기금 순매도는 9조원대에 그쳤다. 수익률은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실현 차익은 제한적이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상반기 국내 증시가 역사적 수준으로 급등했을 때 리밸런싱을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면서 원칙도 지키는 방법이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6월 지방선거 등 정치 일정이 고려됐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돌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렇다면 리밸런싱은 운용 논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거버넌스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리밸런싱의 성격은 기관마다 갈렸다. 공무원연금은 채권과 주식, 대체투자를 1대 1대 1로 유지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아왔지만 주식 강세 국면에서 그 비율이 2대 3대 1까지 기울었다. 하반기에는 줄어든 대체투자 비중을 다시 끌어올려 원칙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교직원공제회는 부동산 지분(에쿼티) 투자와 선순위대출을 자제하는 대신 인프라와 채권 비중을 늘렸다. 행정공제회는 특정 자산군의 성과가 전체 수익률을 좌우하면 포트폴리오 변동성이 커진다는 판단 아래 쏠림을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주식의 성과에 상대적으로 가려졌으나 대체투자는 여전한 핵심 투자군이다. 군인공제회는 대체투자 비중을 지난해 말 74.8%에서 2030년 84.8%까지 끌어올린다는 중기 계획을 밝혔다. 경찰공제회 역시 51.0%인 대체투자 비중을 올해 64.1%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해외 비중 60% 시대…자금 이어 조직도 나간다

교직원공제회의 해외 자산 비중은 올해 2분기 기준 61.1%(44조6187억원)다. 2022년 55.3%, 2023년 56.1%, 2024년 58.2%로 매년 높아지더니 국내 비중(38.9%)을 크게 앞질렀다. 다른 기관도 방향은 같다. 사학연금은 해외 대체투자를 성장축으로 삼아 비중을 늘리고 있고, 행정공제회는 일본과 호주를 새로운 분산처로 지목해 사모신용과 부동산, 인프라, 상장주식 전반에서 아시아태평양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공무원연금은 미국 교직원연기금(TIAA)의 투자자산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해외 대체투자를 늘려왔다.


자금만큼이나 인력, 조직의 이동도 두드러진다. 글로벌 운용사에 자금을 맡기는 데 머물던 방식에서 현지에서 직접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공동투자를 주도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중이다. 교직원공제회는 미국 뉴욕사무소를 연내 개소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국민연금은 중국이나 인도에 다섯 번째 해외사무소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외에 7월에는 KIC가 일본 도쿄지사를 열어 여섯 번째 해외 거점을 확보한 바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해외 거점은 비용이 아니라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 인프라"라고 말했다.


거버넌스와 리밸런싱, 해외라는 세 흐름은 일곱 기관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세부로 들어가면 사정은 제각각이다. 예컨대 군인공제회의 지난해 수익률은 손익계산서 기준 7.4%지만 포괄손익 기준으로는 13.4%다. 대체투자 비중도 총자산 기준 46.2%와 투자자산 기준 74.8%로 갈린다. 같은 지표라도 기준에 따라 값과 의미가 달라지는 만큼 기관별로 하나씩 따로 들여다봐야 한다.


<기금·공제 대해부 연재 순서>

② 국민연금

③ 교직원공제회

④ 사학연금

⑥ 행정공제회

⑦ 군인공제회

⑧ 경찰공제회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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