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PE 투자, AI 인프라에 집중
국내 PE는 위축…손바뀜 거래 늘어나
규제 강화로 역차별은 가속…'기울어진 운동장'
글로벌 사모펀드(PE) 시장이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인프라를 중심으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고금리 부담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글로벌 PE 운용사들은 성장성과 투자 확신이 높은 자산을 선별해 대형 딜에 자금을 집행하고 있다. 반면 국내 PE 시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신규 투자보다 기존 포트폴리오를 또 다른 PE에 넘기는 '손바뀜 거래'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PE 위축…글로벌 PE와 온도차
삼정KPMG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PE 투자 동향과 2026년 하반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PE 투자는 9294건, 1조달러(약 1381조10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투자 규모인 2조3000억달러, 2만1646건과 비교하면 속도는 다소 둔화했지만 자본 유입 자체는 견조했다. 특히 에너지, AI 인프라 등 고부가가치 자산에 투자가 집중됐다.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와 전력 수요, 에너지 안보 강화 흐름이 PE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국내 시장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모습이다. 삼정KPMG는 올해 상반기 한국 PE 투자 규모를 56억달러, 69건으로 집계했다. 중동 호르무즈 해협 운항 차질에 따른 에너지 리스크, 조달금리 상승, 국내 인수합병(M&A) 시장 정체, 국민연금의 신규 국내 PE 출자 중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투자 활동이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국내 시장에 자금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이 비핵심자산 매각을 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충분한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PE를 중심으로 국내 우량자산 투자는 오히려 활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PE가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사이, 글로벌 PE는 국내 우량 자산을 선별적으로 가져가는 구도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국내 PE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과도 맞닿아 있다. 인수금융 조달 비용은 높아졌고, 기업공개(IPO) 시장과 전략적투자자(SI) 매각 시장은 예전만 못하다. 신규 블라인드펀드 조성도 과거보다 까다로워졌다. 출자자(LP)들은 회수 실적과 현금 배분을 더 강하게 요구하지만, 막상 회수할 수 있는 출구는 넓지 않다. 그 결과 최근 국내 M&A 시장에서는 PE가 보유한 기업을 또 다른 PE가 인수하는 '세컨더리 바이아웃'이 주요 회수 통로로 부상하고 있다.
크린토피아·유모멘트·만전식품…PE끼리 사고판다
대표 사례는 크린토피아다. JKL파트너스는 2021년 크린토피아 지분 100%를 약 1900억원에 인수 후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중심이던 사업을 호텔 세탁 등 B2B(기업 간 거래) 영역으로 넓히고 가맹점 수를 3100여개로 늘렸다. 지난해 매출과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각각 2798억원, 365억원으로 인수 당시보다 대폭 개선됐다. 올해 초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크린토피아 지분 전체를 6300억원에 사들였다. 세탁 프랜차이즈라는 생활밀착형 반복 매출 구조와 전국 단위 물류 인프라를 기반으로 추가 성장 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기존 PE가 사업 체급을 키우고, 또 다른 PE는 플랫폼화 가능성까지 내다본 전형적인 손바뀜 거래다.
UCK파트너스가 인수한 웨딩홀 사업자 유모멘트도 비슷한 사례다. UCK는 올해 3월 스톤브릿지캐피탈과 에버그린프라이빗에쿼티가 보유한 유모멘트 지분 100%를 약 2000억원에 인수했다. 특히 UCK는 과거 CJ푸드빌로부터 아펠가모를 인수한 뒤 2019년 에버그린PE에 매각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 거래는 한 차례 회수했던 자산군에 다시 들어간 재투자이기도 하다.
'만전김'으로 알려진 만전식품도 PE 간 거래다. UCK는 지난 5월 카무르PE로부터 만전식품을 2100억원에 인수했다. 카무르PE는 2021년 약 1000억원을 투자해 만전식품을 인수한 뒤 5년 만에 원금의 두 배가량을 회수하게 됐다. 김 수출 성장세와 K푸드 확산을 배경으로, 한 PE가 발굴한 소비재 자산을 다른 PE가 이어받아 더 큰 성장 전략을 짜는 구조다.
물론 PE 간 거래 자체가 시장 침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성숙한 PE 시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회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런 거래가 늘어나는 배경이다. SI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IPO 시장도 기대만큼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PE가 팔 수 있는 대상이 다시 PE로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회수 시장의 성숙"이라는 평가와 함께 "제한된 매수자 풀 안에서 자산이 돌고 도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규제 역차별 논란도…좁아지는 국내 PE의 운동장
규제 부담도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사모펀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차입, 보수, 공시, 내부통제 등을 둘러싼 규제 강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규제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연내 추진할 계획이며,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회에는 사모펀드 규제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규제가 국내 운용사에 더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외국계 PE는 글로벌 펀드 구조와 해외 법인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반면, 국내 운용사(GP)는 각종 규제를 정면으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PE는 AI와 에너지 인프라 같은 성장 자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운신 폭을 넓히고 있다면, 국내 운용사들은 투자 집행 전부터 금리, LP 눈높이, 규제와 여론 부담을 동시에 따져야 한다. 투자와 회수 선택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국내 PE가 글로벌 PE와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물론 홈플러스 사태 이후 사모펀드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과도한 차입, 배당, 자산 매각이 포트폴리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분명하다. 다만 규제가 국내 운용사에만 집중된다면 결과적으로 국내 자본의 투자 여력을 약화시키고 우량 자산 주도권을 해외 자본에 넘겨주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PE업계 관계자는 "국내 PE가 글로벌 PE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회수 통로 확대와 책임성 강화, 산업 경쟁력 제고가 함께 가야 한다"며 "글로벌 PE는 뛰고 있는데 국내 PE만 서로의 포트폴리오를 사고파는 데 머문다면, 문제는 개별 딜이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