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데이터센터 전력망 접속 심사 강화
美 개발 파이프라인 20% 지연 위험 노출
전력·용수·인허가가 AI 인프라 새 변수로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의 핵심은 한동안 누가 더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고, 누가 더 큰 데이터센터를 짓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변수가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지어도 전기를 제때 끌어올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하나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데이터센터 투자에 제동장치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력 인프라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심사 강화에 전력 '대기표' 뽑고 기다려야
대표 사례는 텍사스다. 텍사스주(州) 정부는 이달 초 전력망 연결 승인을 기다리는 신규 데이터센터의 기존 심사 절차를 일시 중단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검증을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대규모 전력 수요를 전력망이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를 주로 봤지만, 이번에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자체의 적정성까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심사 대상도 넓어졌다. 소유·지배구조, 공공 인센티브, 예상 전력·용수 사용량, 자체 조달 여부, 지역사회 영향 등이 추가로 평가될 예정이다. 다만 텍사스 내 데이터센터 건설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는 아니다. 빠르게 늘어난 신청 수요 가운데 실제 추진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가려내겠다는 취지에 가깝다.
배경에는 폭증한 전력 연결 수요가 있다. 텍사스 전력망 운영기관 ERCOT에 접수된 대규모 전력 연결 대기 규모는 약 474기가와트(GW)에 달한다. 텍사스 최대 피크 수요 약 91GW의 5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약 90%가 데이터센터 관련 신청으로 파악된다. 물론 이 수요가 모두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 단계이거나 투기성 프로젝트도 포함돼 있다.
전력망 접속 지연,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리스크로
문제는 전력망 접속 지연이 프로젝트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망 연결 승인은 별개다. 부지 확보, 고객 계약, 자금 조달, 건설이 진행되더라도 전력망 연결이 확정되지 않으면 실제 가동은 늦어진다. 건물과 서버, GPU 투자가 끝난 뒤 전력 공급이 지연되면 돈은 이미 들어갔는데 매출과 현금흐름은 뒤로 밀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블룸버그NEF는 이번 텍사스 조치로 미국 전체 데이터센터 개발 파이프라인의 약 20%, 49.8GW가 지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 가운데 2027년 1분기까지 실제 가동이 예상되는 물량의 전력 공급이 늦어질 경우 약 80억달러(약 11조592억원) 규모 매출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규제는 전력망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미국에서는 환경, 용수, 지역사회 부담, 인허가 문제까지 데이터센터 건설의 제동장치로 부상하고 있다. 뉴욕주는 신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에 대해 주 전체 차원의 1년 유예 조치를 도입했고, 펜실베이니아는 데이터센터를 신속허가 프로그램에서 제외하고 환경·투명성 기준과 지방정부 승인 요건을 강화했다. PJM(미 동부·중서부 13개 주와 D.C.의 전력망 운영기관) 전력망 권역에서도 비상 상황 시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사용을 줄이고 백업 전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프로젝트 차별화 과정 펼쳐질 전망
프로젝트 간 차별화도 상당해질 전망이다. 이미 전력망 연결 승인과 고객 계약을 확보한 데이터센터는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반면 승인을 기다리는 프로젝트는 자체 발전을 활용하거나, 단계적으로 전력망에 연결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불확실성이 반복되면 대주단과 투자자는 전력 공급과 가동 시점에 대해 더 보수적인 조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프로젝트 자금조달 자체가 다시 제약 요인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최근 미국 각지에서 나타나는 규제와 선별 과정은 다소 거칠지만, 빠르게 늘어난 데이터센터 개발계획을 실제 수요와 실행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걸러내는 신중한 조정 과정으로도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