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의뢰 동국대 지인엽 교수 분석
기소 후 위험 회피 심리로 투자 위축
구성요건 명확화 촉구
배임죄 기소 공시 이후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현금 보유 비중을 대폭 늘리는 등 보수적인 경영 행보를 보인다는 실증 분석 결과가 나왔다. 현행 배임죄 적용의 모호함과 과도한 처벌 규정이 기업의 과감한 혁신과 도전적인 투자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26일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배임죄 적용이 기업의 위험회피 성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6년까지 배임 기소 사실을 공시한 상장사 119곳을 분석한 결과, 기소 공시가 이뤄진 분기부터 7분기 동안 기업의 현금보유비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 당해 분기(0분기)의 현금보유비율은 직전 분기 대비 1.7%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이후 점진적으로 증가해 7분기 뒤에는 5.4%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이는 분석 기간 중 해당 기업들의 평균 현금보유비율(12.0%)의 약 45%에 달하는 수치다.
보고서는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현금 보유 비중이 중장기적으로 많이 늘어난 것에 대해, 배임죄 기소 여파로 기업의 재무 정책 기조 자체가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전환됐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기소 이전에는 유의미한 현금 보유 증가세가 관찰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기소 이후 기업 심리가 급격히 경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 배임죄는 '임무 위배' 등 범죄 성립을 결정짓는 요건과 적용 기준이 불명확해 기업 경영진에 지나친 부담을 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배임·횡령죄의 1심 무죄율은 평균 6.2%로, 형법상 전체 범죄 평균(3.0%)의 2배를 웃돌았다.
미국과 영국은 별도의 배임죄 규정 없이 사기나 횡령,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으로 다루며, 독일과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들도 경영진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해 내린 결정이라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면해주는 '경영판단원칙'을 폭넓게 적용한다.
반면 한국은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죄 외에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을 통해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본부장은 "이번 연구는 배임 기소가 최종 유·무죄 판단과 무관하게 기업의 혁신과 투자활동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라며 "경영상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합리적 의사결정이 위축되지 않도록 배임죄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고 경영판단원칙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