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실채권 회수에도 활용 가능"
소송금융사 버포드캐피탈 한국 대표·아시아 대표 인터뷰
에너지·건설·배터리·특허 분쟁서 한국 수요 확인
최근 신정아 버포드캐피탈 한국 대표는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대규모 특허분쟁이나 투자자 중재는 몇 년씩 걸릴 수 있고, 소송이 끝난 뒤 실제 회수 단계까지 가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외 소송과 국제중재에는 변호사 비용뿐 아니라 중재기관 수수료와 중재인 비용, 강제집행 비용까지 들어간다. 버포드캐피탈 같은 소송금융사는 이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승소하거나 합의를 통해 돈을 회수하면 약정한 몫을 가져간다. 패소하면 기업이 투자금을 갚을 의무가 없는 비소구 방식이다.
"소송비도 외부자본으로 조달"
버포드캐피탈은 2009년 설립된 글로벌 소송금융사다. 올해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서울에 거점을 마련했다. 법무법인 광장 국제중재팀에서 10년 넘게 상사중재와 건설중재, 투자자·국가 간 분쟁 등을 맡았던 신 대표가 한국 사업을 이끌고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소송금융을 찾는 이유는 다르다. 중소·중견기업은 해외 소송에 투입할 자금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반면 대기업은 여러 해외 분쟁 가운데 어디에 자금과 법무 인력을 집중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소송금융을 검토한다.
신 대표는 "대기업은 자금 부족보다는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어디에 집중할지를 더 큰 고민으로 인식한다"며 "해외 분쟁이 많은 기업은 내부 인력과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일부 사건을 외부 자본을 활용해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함께 인터뷰에 나선 퀜틴 박(Quentin Pak) 버포드캐피탈 아시아 대표는 이를 일반적인 기업금융에 빗댔다. 그는 "기업에 돈이 많더라도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사옥을 지을 때 금융을 활용한다"며 "법률비용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반드시 자기자본을 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특히 한국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한국에는 해외에서 사업하는 대기업이 많고, 그만큼 국경을 넘는 분쟁도 많다"며 "장기적으로 한국이 버포드의 아시아 사업에서 가장 큰 매출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선 에너지·건설·배터리 분쟁 수요
한국에서 실제 수요가 두드러지는 분야는 에너지와 건설, 인프라다. 대형 해외 프로젝트는 계약 당사자가 많고 여러 국가의 법률과 관할이 얽혀 있어 분쟁이 복잡하고 규모도 커지기 쉽다.
배터리를 포함한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특허침해 소송과 투자자 중재, 인수합병(M&A) 관련 분쟁 등도 국내에서 검토하는 분야다.
신 대표는 "건설과 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의뢰가 들어오고 있고 실제 검토한 사건도 꽤 있다"며 "투자자 중재와 M&A 관련 분쟁, 미국 특허침해 소송 등도 검토해왔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와 증권사는 해외 부실채권 회수 과정에서도 소송금융을 활용할 수 있다. 회수하지 못한 해외 채권 여러 건을 포트폴리오로 묶어 현지 소송과 집행 비용을 지원받는 방식이다.
버포드는 통상 규모가 큰 상업 분쟁을 중심으로 투자 여부를 검토한다. 신 대표에 따르면 버포드는 통상 글로벌 시장에서 약 5000만달러 수준의 사건 규모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시장 특성을 감안해 약 3000만달러 수준까지도 들여다본다. 개별 사건이 작더라도 여러 건을 포트폴리오로 묶는 방식도 가능하다.
"불확실성 클수록 분쟁 늘고 소송비에 더 민감해져"
박 대표는 최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통상 갈등도 소송금융 시장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봤다. 경기가 흔들리면 계약 불이행이나 가격 변동을 둘러싼 분쟁은 늘어나는 반면 기업들은 거액의 소송비를 자기 돈으로 지출하는 데 더 신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기업이 늘면서 분쟁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업은 자기자본을 쓰는 데 보수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외부 자본을 활용하려는 수요도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시아 시장 확대의 가장 큰 과제로는 낮은 인지도를 꼽았다. 박 대표는 "싱가포르 사무소를 연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대기업을 만나면 국제중재 비용을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기업뿐 아니라 분쟁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고객을 만나는 변호사들이 소송금융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런 장벽을 비교적 빠르게 넘을 수 있는 시장으로 평가했다. 해외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는 기업이 많고 국내 법률시장도 국제분쟁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해외 자격을 갖춘 국내 변호사도 많아 제3자 소송금융 자체가 완전히 낯선 개념은 아니라는 게 박 대표의 판단이다.
신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송금융을 하나의 선택지로 자연스럽게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여러 산업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고 고객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