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주소①] 기금·공제 지방 이전 어떻게
메타, 2800명 직원 한 공간 사무실 설계
"아이디어 교환과 협업 유도를 위한 공간"
홍콩·싱가포르는 세제·비자로 인력 흡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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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농협중앙회·교직원공제회·서민금융진흥원·신용회복위원회 등의 일방적 지방이전 시도를 중단하라"며 기자회견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800명의 직원이 칸막이 없이 하나의 거대한 열린 공간에 근무하는 기업이 있다. 메타(당시 페이스북)는 2015년 신사옥 MPK20를 공개하고, 43만제곱피트가 넘는 이 커다란 사무공간의 콘셉트는 '하나의 큰 방(one big room)'이라고 밝혔다.
팀을 층마다 나누는 대신 곳곳에 회의실과 카페, 휴게공간을 두고 직원들이 걸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마주치도록 했다. 회사 측은 이러한 설계의 배경에 대해 "아이디어 교환과 협업을 유도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술이 공간의 제약을 상당 부분 없앴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
MIT 연구진이 2004~2014년 논문 4만358편과 특허 2350건을 분석했더니, 같은 업무공간의 연구자들은 400m 떨어진 연구자보다 논문을 함께 쓸 가능성이 3배 이상이었다. 특허 공동작업 가능성도 2배 이상이었다.
하버드대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저서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에서 도시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불렀다. 사람이 가까이 모이면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구하기 쉽고, 근로자는 더 많은 일자리를 고를 수 있다. 기업끼리는 전문 서비스와 인프라를 공유하고, 사람 사이에서 지식과 아이디어도 빠르게 퍼진다. 글레이저는 도시의 본질을 건물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근접성과 밀도'에서 찾았다.
OECD는 도시 인구가 두 배가 될 때 생산성이 평균 2~5%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더 두꺼운 노동시장, 기업 간 학습, 빠른 아이디어 확산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미 성공한 기업이 모여 있는 곳에는 금융과 벤처캐피털(VC)에 접근하기도 쉬워진다. 사람이 모이고 기업이 따라오며, 다시 자본과 전문 서비스가 붙는 구조다.
아시아 금융허브 경쟁 도시, 홍콩·싱가포르는 '자본·인력 모시기'
금융에서는 이런 집적이 도시 간 자본·인재 유치경쟁으로 이어진다. 싱가포르는 지난 19일 펀드매니저 세제 혜택과 고급 금융인력의 비자 지원, 헤지펀드 유치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최근 5년간 싱가포르 자산운용업은 연평균 7.5% 성장해 운용자산이 7조싱가포르달러에 육박한다. 홍콩이 펀드매니저 성과보수 등에 대한 세제 우대를 강화하자 싱가포르도 대응에 나선 것이다.
올해 3월 발표된 세계금융센터지수(GFCI 39)에서 홍콩은 3위, 싱가포르는 4위였다. 서울은 두 계단 오른 8위, 부산은 23위다. 평가점수는 홍콩 765점, 싱가포르 764점, 서울 741점이었다. 서울도 세계 상위권에 들었지만 자본과 인재를 유치하려는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금융 관련 기관의 지방이전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한국과는 대비된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등이 거론되고, 전북은 9대 공제회와 한국투자공사 등을 유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직 이전 대상과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부산에는 거래소와 예탁결제원 등 금융기관이 자리 잡고 있지만, 부산시가 지난 4월 수도권 자산운용사와 VC·핀테크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설명회를 연 곳은 서울 여의도였다. 자산운용사와 투자회사를 추가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치 활동은 여전히 금융회사가 밀집한 서울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공제회는 이번 논쟁에서 '돈의 거리'를 따져보기 좋은 사례다. 회원 돈을 직접 굴리는 데다 부동산·인프라·PEF 등 사람과 전문 네트워크의 역할이 큰 대체투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134조원 굴리는 공제회…절반 이상은 '사람이 붙는 투자'
전북연구원이 지난해 말 자산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 8개 공제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들의 총 투자자산은 약 134조9000억원이다. 교직원공제회 50조9000억원, 지방행정공제회 31조9000억원, 군인공제회 20조5000억원, 과학기술인공제회 15조4000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부동산·인프라·PEF·사모신용 등 대체투자는 약 85조8000억원에 달한다. 교직원공제회의 대체투자 비중은 68.3%, 지방행정공제회는 74.3%, 과학기술인공제회는 71.7%였다. 같은 자료에서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당시 14.6%였다. 공제회는 국민연금보다 전체 자산은 작지만 외부 운용사와 투자은행, 법무·회계법인이 거래에 깊숙이 관여하는 자산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투자는 특히 전문 금융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상장주식과 국채는 공개된 가격을 보고 전산망에서 거래할 수 있다. 반면 기업 인수합병(M&A), 사모펀드(PEF), 벤처투자, 부동산·인프라는 다르다. 딜을 발굴하고 실사한 뒤 투자구조를 짜고, 투자위원회를 거쳐 사후관리와 매각까지 가는 과정에 운용사와 증권사, 회계·법무법인 등이 계속 참여한다. 전북연구원도 대체투자는 공개시장 투자보다 딜소싱과 전문 금융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다고 분석한 배경이다.
한 VC 대표는 "투자 대상을 찾는 데서 온·오프라인 구별이 없고 국경도 없지만 투자 아이디어, 투자 의사결정 등은 간단한 저녁자리에서의 의견 교환 에서도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자할 물건을 찾은 뒤에도 사업성을 확인하고, 가격을 협상하고, 대출과 지분을 섞어 거래구조를 짜고, 법률·세무 문제를 검토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은 수많은 미팅과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금 유치를 위해서야 어디든 찾아가겠지만, 자본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분명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공제회 유치를 추진하는 전북연구원도 이런 우려를 부정하지 않는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서울 금융 네트워크에서 떨어지면 투자정보 접근성이 낮아지고 전문인력 유출과 의사결정 지연이 수익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요 쟁점으로 꼽고 있다. 공제회 자산은 회원 부담금과 운용수익으로 조성되는 만큼 회원자산 보호와 수익률을 이전의 최우선 전제로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