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일·베인캐피털 등 세리에A 투자 진행
'과거의 영광' 부활 노린 저점매수 평가
영국 EPL·스페인 라리가엔 이미 자금 투입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스포츠 투자가 유럽 축구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페인 라리가, 프랑스 리그1에 이어 이번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가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과거 유럽 축구 중심에 섰던 세리에A가 침체된 상황을 글로벌 PEF들은 오히려 '저점 매수' 기회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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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리노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2026년 9월 6일 열린 유벤투스 FC와 AC 밀란의 이탈리아 세리에A 경기에서 유벤투스 선수들과 AC 밀란의 루카 모드리치가 볼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칼라일과 베인캐피털은 세리에A의 해외 중계권 보유 법인 대상 소수 지분 투자를 검토 중이다. 세리에A 지난 시즌 우승팀 인테르밀란을 보유한 오크트리캐피털, 이탈리아 현지 운용사 넥스탈리아도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딜의 주관은 JP모건이 맡았다.
투자자들은 세리에A의 해외 중계권과 함께 해외 베팅·스폰서십 사업을 담당하는 법인의 지분 10~20%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법인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연 2억유로 안팎이다. 지분 전체 기준 기업가치는 30억~40억유로(약 4조7294억~6조3058억원) 수준으로 평가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공할 경우 이탈리아 축구 리그 차원에서 중계권 사업에 대한 첫 대규모 PEF 투자가 이뤄지는 셈이다.
앞서 세리에A는 2021년에도 CVC캐피털파트너스가 이끄는 컨소시엄에 국내 중계권 사업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당시 거래 규모는 17억유로 수준으로 거론됐지만 구단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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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소속이었던 김민재 선수가 당시 이탈리아 나폴리 디에고 마라도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세리에A 18라운드 AS로마와의 홈경기에서 AS로마 공격수 태미 에이브러햄과 머리로 볼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 축구 넘나드는 PE 자금
글로벌 PEF의 유럽 축구 투자는 이미 여러 차례 성사됐다. 대표 사례는 스페인 라리가다. 2021년 라리가 구단들은 CVC의 19억9400만유로 투자를 승인했다. CVC는 라리가 방송권과 스폰서십 수익을 받는 신설 법인 지분 8.2%를 확보했고, 투입 자금은 구단 인프라 개선과 디지털 전환, 채무 감축 등에 쓰이는 구조였다.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일부 대형 구단은 반대했지만 다수 구단은 자금 유입을 택했다.
프랑스 리그1도 같은 길을 걸었다. 2022년 CVC는 프랑스프로축구연맹(LFP)의 중계권 사업 법인 지분 13%를 15억유로에 인수했다. 코로나19 이후 재정난에 프랑스 구단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 수익 일부를 외부 투자자와 나눈 것이다.
구단 단위 투자도 활발하다. 이탈리아에서는 레드버드캐피털이 2022년 엘리엇으로부터 AC밀란을 12억유로에 인수했다. 인테르밀란 역시 2024년 중국 쑤닝 측이 오크트리에 3억9500만유로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오크트리가 구단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EPL의 첼시는 2022년 토드 보엘리와 클리어레이크캐피털이 주도한 컨소시엄에 42억5000만파운드(약 7조7892억원·지분 및 투자 계획 금액 포함)에 매각됐다. 축구가 더는 구단주 개인의 취미나 명예 자산이 아니라 중계권·스폰서십·경기장·데이터·팬덤을 결합한 대체투자 자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하방 단단한 해외 스포츠 투자
PEF가 스포츠에 주목하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경기 결과에 따라 단기 실적이 흔들릴 수 있지만 팬덤은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 한 번 특정 구단이나 리그의 팬이 되면 장기간 소비자로 남는 경우가 많다. 중계권, 스폰서십, 티켓, 머천다이즈(구단 관련 상품), 경기장 부동산, 데이터 사업 등 수익원도 다양하다.
JP모건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스포츠팀과 관련 사업이 대체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안정성과 분산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TV와 스트리밍 플랫폼이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스포츠 중계권을 치열하게 확보하면서, 스포츠 중계권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현금흐름으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미국 프로스포츠는 이미 제도적으로도 PEF 문을 열었다. 미국프로풋볼(NFL) 구단주들은 2024년 일부 PEF가 구단 지분을 취득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다만 개별 구단에 대한 PEF 보유 한도는 10%로 제한되고, 사전 승인된 운용사만 투자할 수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와 미 메이저리그(MLB),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등도 이미 기관투자가의 소수 지분 투자를 허용해왔다. JP모건은 미국 4대 프로스포츠 리그 구단의 총 가치가 5000억달러(약 680조원)에 근접했고, NFL 구단의 평균 가치는 약 70억달러 수준이라고 봤다.
세리에A는 왜 '저점 매수'인가
세리에A가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세리에A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 축구의 중심이었다. AC밀란, 인테르밀란, 유벤투스, AS로마 등은 전 세계 팬덤을 보유한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리그 자체의 역사와 스토리텔링 자산은 여전히 강하지만, 상업적 경쟁력은 예전 같지 않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4~2025시즌 EPL 구단들의 합산 매출은 68억파운드에 달했다. 반면 세리에A는 약 30억유로 수준에 그쳤다. 프리미어리그가 세리에A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시장으로 성장한 셈이다.
해외 중계권 격차도 크다. 세리에A의 해외 중계권 사업은 연간 약 2억5000만유로의 매출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EPL은 20억유로를 웃돌고, 라리가도 8억유로 내외로 전해졌다.
구단 인프라 역시 약점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주요 구단 상당수는 여전히 지방정부 소유한 노후 경기장 시설에 의존해왔다. 경기장 현대화와 복합 엔터테인먼트화가 늦어지면서 경기 수익, 프리미엄 좌석, 각종 행사, 관광 수익 등 매출원을 다각화하고 키우기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PEF 입장에서는 이런 약점을 기회로 본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 마케팅, 경기장 수익화, 스폰서십 패키지, 디지털 콘텐츠를 손보면 같은 자산으로도 더 많은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세리에A의 선수 수급 구조도 투자 논리에 포함될 수 있다. 이탈리아 리그는 전통적으로 남미와 동유럽, 아프리카 선수들의 유럽 진출 관문 역할을 해왔다. 리그가 글로벌 중계와 디지털 유통을 강화하면 선수 발굴 능력과 역사적 브랜드를 결합한 반등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스포츠 투자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리그 단위 중계권 투자는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구단별 배분 방식, 장기 수익 공유, 팬 반발, 리그 운영권 침해 우려가 뒤따른다. 라리가의 CVC 거래도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반대 속에 추진됐다. 프랑스 리그1의 CVC 거래 역시 단기 유동성 확보에는 도움이 됐지만, 이후 프랑스 축구의 중계권 가치 하락과 리그 경쟁력 약화 논란 속에서 비판을 받았다.
세리에A 역시 같은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리그 전체의 해외 중계권 수익을 키우려면 중앙집권적 영업력과 장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각 구단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배분금과 통제권을 따질 수밖에 없다. 2021년 CVC 컨소시엄의 국내 중계권 투자안이 구단 동의 부족으로 무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거래 역시 최소 14개 구단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만큼, 실제 성사 여부는 아직 열려 있다.
"그때 들어갔더라면"…KIC의 LA다저스 투자 시도
한국에서도 스포츠 자산 투자를 둘러싼 아쉬운 사례가 있다. 한국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2015년 LA다저스 지분 약 19%를 4000억원 이상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당시 KIC는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구겐하임파트너스 측으로부터 입장권 판매와 중계권 등 각종 미디어 계약 수익권 일부를 양도받고, 연 최소 3% 수익률을 보장받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장수익과 원금을 10년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조건이 알려지면서 유동성과 수익성 문제가 제기됐고, 국회 차원의 감사원 감사 요구로까지 번졌다. 결국 KIC의 LA다저스 투자는 무산됐다.
결과적으로는 아쉬운 판단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겐하임 컨소시엄은 2012년 LA다저스를 약 20억~21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포브스는 2026년 3월 기준 LA다저스의 구단 가치를 78억달러로 평가했다. 단순 지분가치 기준으로 당시 KIC가 4억달러 안팎에 19% 지분을 확보했다면 현재 가치는 15억달러에 육박했을 수 있다. 팬덤과 중계권, 경기장 수익, 글로벌 콘텐츠 가치가 결합한 스포츠 자산의 희소성을 과소평가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스포츠 시장에도 이 같은 PEF 자금이 유입될 수 있을까. 국내 PEF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한 PE 업계 관계자는 "스포츠 자체는 매력적인 자산군이지만, 미국은 이미 딜 규모와 밸류에이션이 너무 커져 신규 진입이 쉽지 않다"며 "반대로 한국은 리그와 구단 매출 규모 자체가 작고 우상향 추세를 확신하기 힘들어 PEF가 관심을 가질 만한 '판'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