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구조조정 및 지원제도 살펴보니
단순 자금지원 넘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해야
"핵심은 지속적인 현금창출 구조 마련"
① "죽기 직전까지 돈 빌린다"…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치는 기업들
①[인터뷰]"현금 떨어진 뒤엔 늦다…구조조정, 실패 아닌 경영수단"
② "돈 더 빌려준다고 살아나나"…구조조정 핵심은 '기업 경쟁력'
②[인터뷰]"가장 중요한 건 원인분석, 다음은 선택과 집중"
③ 정부가 판 깔아라…기업·금융이 움직이는 '선제적 구조조정' 생태계
국내 기업에 부실 징후가 나타났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구조조정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용위험평가를 통한 부실 징후 파악부터 신속금융지원과 프리워크아웃, 워크아웃, 회생절차까지 단계별 장치가 마련돼 있다. 문제는 '기업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과 '기업을 다시 돈을 벌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자금을 투입해 만기를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2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부실이 본격화되기 전 기업신용위험평가 B등급 기업을 상대로 경영개선을 지원하는 자체 프로그램들이 다수 운영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 기업은 1222개사로, 신속금융지원 581개사, 프리워크아웃 321개사, 특별약정 320개사 등이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1179개사로 전체의 96.5%를 차지했다.
2024년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이 종료된 기업 가운데 70.3%는 경영정상화로 종료됐고, 20%는 '정상화 불능'으로 끝났다. 이보다 부실 징후가 심각한 C, D 등급 기업들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기반한 워크아웃 등 사적 구조조정이나 회생절차를 밟게 된다.
다만 C등급 기업에 대해 주채권은행 주도로 만기 연장, 채무 조정, 자금 지원 등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기촉법(7차)은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 구조조정 제도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일몰 예정인 기촉법을 꼽으며 "아직 연장된다는 소식도 없다. 위헌 논란으로 인해 계속 문제가 돼 한시법으로 갔는데, 일단 연장부터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기촉법이 일몰되면 기업으로선 법원 회생절차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금융당국은 기촉법 상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재산권 침해 등 위헌 논란도 거세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 구조조정 생태계는 미국 등과 비교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정주 알바레즈앤마살(A&M) 한국 구조조정부문 대표는 "미국 등 성숙한 시장과 비교하면 법적 제도 자체뿐 아니라 그 제도를 둘러싼 구조조정 생태계의 깊이에서 차이가 있다"며 "(성숙된 시장은) 전문 구조조정 자문사와 부실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투자자와 자본, 기업과 채권자 간 협상 관행, 법정 밖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구조조정 방식 등이 오랜 기간 축적돼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채무자와 채권자 양측이 전문 구조조정 자문사를 활용해 구체적인 방안을 설계, 실행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민간 자본을 활용한 구조조정 역시 주요국 대비 우리나라가 뒤처진 분야로 손꼽힌다.
최근 몇 년간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전통적 회생절차와 법원 밖 워크아웃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워크아웃 방식을 추구하는 움직임도 확인된다. 한국에서는 서울회생법원이 2025년 도입한 Pre-ARS가 유사한 사례로 꼽히지만 실제 활용도는 낮다.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이정엽 법무법인 로집사 대표는 "Pre-ARS나 하이브리드 등 예방적 구조조정 제도가 현재는 잘 작동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일정 부분 채권자의 참여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기업 구조조정은 단순한 재무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명은진 룩센트 파트너는 "신규자금을 투입하거나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호흡기를 달거나 주사를 놓아 시간을 버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기업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 문제가 있는 부분을 도려내고 새로운 것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리소스 재배분"이라고 지적했다.
즉, 적자사업 철수와 비핵심 자산 매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계열사 통폐합, 인력·조직 재편, 차입구조 개선 등을 통해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이뤄져야만 한다. 다수의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과거 소비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최근에는 원전·로봇·반도체 소재 등으로 주력사업을 재편해온 두산그룹을 구조조정 우수 사례로 꼽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부실이 심해진 뒤에는 매각할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고 신규 투자자를 찾기도 어려워지는 만큼,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사업과 재무구조를 동시에 손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구조조정 지원의 방향을 단순한 유동성 공급에서 기업의 실질적인 경영개선으로 가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기존 신속금융지원 등의 제도를 단순한 유동성 지원이 아니라 ‘채무조정-신규자금-경영컨설팅’ 패키지로 강화해야 기업의 경영개선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운영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명 파트너는 "기업들은 단순히 사업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력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도 함께 선별해야 한다"면서 "사업을 축소한 뒤 남는 자금과 인력 등 리소스를 어디에 다시 배분할 것인지까지 봐야 한다. 구조조정은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핵심사업에 자원을 다시 집중하는 과정"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