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만 베일 벗는 대미 투자 '1호'
"日보다 한발 늦어"…속도전 시험대
과잉관세 방어·통상 영토 다변화도 숙제
새 사령탑 부임과 함께 조직 정비를 마친 통상교섭본부가 본격적인 대미 투자 합의 이행에 나선다. 일본이 대미 투자를 먼저 이행한 가운데 한국이 지난해 미국과 합의한 15% 관세 상한을 지키면서 투자 실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미 투자 사업의 이행 속도와 협상력이 새 통상교섭본부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베일 벗는 데만 10개월…대미 투자 '1호' 신속 집행 관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미 투자 '1호 사업'의 이행이다. 무역법 301조에 따른 과잉생산 관세 위험이 남은 상황에서 일본보다 투자 이행이 더 늦어지면 한국의 협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응도 변수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16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한국의 대미 투자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며 "일본과 대만은 (대미 투자가) 이미 발표 후 진행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보니 미국 입장에서 순서를 매긴다면 한국이 제일 소극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실장은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선거를 두 달도 안 남긴 만큼 조바심이 강해졌고, 표심에 어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이행 결과물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춰줬으니 너희도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일단은 합의된 내용의 이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조선 분야 1500억달러와 전략적 투자 분야 2000억달러 등 총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양측이 합의한 한국의 연간 투자 상한액은 200억달러다.
대미 투자 '1호 사업' 후보로는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와 대형 원전 건설 사업 등이 거론된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투자 규모는 미국 측의 예산 증액 요청에 따라 당초 검토된 198억달러보다 25억달러 늘어난 223억달러(약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과 원자력 발전 수주는 우리에게도 나쁘지 않은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 딴지를 피하면서도 원전 수출을 통해 국익을 도모할 기회라는 평가다.
대미 투자 '상업적 합리성'도 좋지만…'소탐대실' 경계
다만 단기적인 셈법이나 '상업적 합리성'에 치우쳐 사업 이행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1차 사업을 정하는 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렸는데 2호, 3호 사업까지 체계적으로 물색하고 검토해왔는지 의문이 있다"며 "상업성과 합리성을 다 따지다가 시기를 놓치면 소탐대실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미국은 온라인 플랫폼법, 쿠팡 로비 문제, 파병 요구 등 여러 패를 가지고 꽃놀이패처럼 복합 전략을 쓰는데 우리는 개별 사안마다 따로따로 방어하려다 보니 선택과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다"며 "대미 투자 문제는 통상교섭본부장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청와대가 전략적 거래의 지혜를 발휘해 전체적인 틀을 풀어줘야 하고, 주미한국대사관의 현지 정무적 로비 네트워크도 대폭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본의 투자 이행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상업적 합리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본은 자금 여력이 크고 정치적 판단이 우선하는 구조지만, 한국은 사후 평가나 책임 소재 문제가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상업적 합리성을 고수하는 기조가 더 나을 수 있다"며 "한국은 제조업의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대미 투자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이익을 얻거나 사업에 참여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지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봤다.
장 원장은 이어 "한미 간에 합의한 조인트 스테이트먼트(JFS)에는 대미 투자 규모를 연 200억달러 한도로 한다는 내용이 이미 존재한다"며 "환율과 외환 사정을 고려해 기존 합의 이행 약속을 강조하면서 미국 제조업 부흥과 에너지 협력에 기여하겠다는 신뢰 관계를 지속해서 피력하는 방식으로 트럼프의 압박을 피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관세 상한 방어와 통상 영토 확장도 숙제
무역법 301조에 따른 '과잉생산 관세' 방어도 새 통상교섭본부의 과제다. 지난 7월 확정된 강제노동 관세의 한국 상한은 12.5%다. 추가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기존 한미 합의인 '전체 관세 15% 상한'을 지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장 원장은 "이미 15% 합의 틀이 있는 데다 철강이나 석유화학을 제외하면 한국 제조업의 가동률이 과잉 생산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301조 과잉생산 관세의 직접적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 역시 "301조 방어의 핵심은 지난해 합의한 15% 관세 수준보다 악화하지 않도록 막고,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 타국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최혜국 대우 기준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시장 다변화도 필요하다.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공급과잉 물량 수출에 대응하려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등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장 원장은 "미국의 관세 장벽과 중국의 공급과잉 속에서 한국이 제3국 시장을 확보하려면 메가 FTA가 필수적"이라며 "새 통상교섭본부는 CPTPP 가입 추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