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기관부터 위원까지
비밀유지협약 맺는 사례 드물어
"기관 평가 시 항목으로 추가해야"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정작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의 핵심 기술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특례상장을 위해 전문평가기관에 영업비밀에 해당할 수 있는 기술자료까지 제공하면서도 별도의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6일 자본시장 업계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일부 기업들은 상장 추진 당시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기술성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별도의 NDA를 체결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NICE평가정보 등 지정 전문평가기관에 핵심 기술자료를 제공해야 했지만, 해당 정보에 대한 비밀유지계약은 별도로 맺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이 일정한 재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코스닥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원하는 기업은 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2곳에서 일정 등급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 평가 과정에서는 기술의 완성도와 경쟁력, 사업화 가능성 등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개발 성과와 기술사업계획서 등 다양한 자료를 제출하게 된다.
기술유출 우려에도 항의조차 못해
문제는 기업이 핵심 기술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비밀유지를 위한 계약상 보호장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평가기관의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상장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운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보안성 유지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갑을'관계인 실정이다.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한 기업 관계자는 "거의 모든 걸 까야 하는 상황인데 NDA 한 장도 안 써준다"고 토로했다. 상장 일정과 평가 결과에 대한 부담 탓에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관뿐 아니라 평가위원들로부터 개별적인 NDA를 받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성 평가 과정에서 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은 변리사 등으로 외부 전문가 평가위원회(자문단)을 구성해야한다. 평가위원들은 제출된 핵심 자료를 평가하는 등 상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에 기술 유출 우려가 있어도 NDA 체결 요구 등을 할 수 없고 평가 등급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형 회계법인 상장 관련 파트너는 "외부에서 위촉된 평가위원들한테 NDA 받기도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며 "기술을 다 들여다본다면 NDA가 필요한데 그러한 절차가 미흡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는 기업 상당수가 바이오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기술 경쟁력이 기업가치의 핵심인 업종에 속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평가 과정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연구개발 결과나 제조공정, 기술 구현 방식 등이 제공될 경우 정보유출에 따른 피해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장에 실패한 기업 역시 이미 제출한 기술정보에 대해서는 유출 위험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도 개편하는 거래소, 유출 우려는 '무관심'
이런 상황에서 거래소가 추진 중인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편 역시 평가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거래소는 지난 19일 '표준 기술평가모델 고도화 및 전문평가 운영체계 개편 설명회'를 열고 연내 확정할 제도 개선 방향을 공개했다. 반도체 설계·지식재산권(IP), 사이버보안, 우주항공, 로보틱스 등 신산업 분야의 기술평가 기준을 추가하고 전문평가 자문인력을 기존 4명에서 6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문평가기관에 대한 내부통제도 강화한다. 수익사업을 수행하는 평가기관은 내부통제 가이던스 이행 현황과 수익사업 수임 정보를 반기마다 공개하도록 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분쟁 조정 절차도 명문화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전문평가기관을 26곳에서 16곳으로 축소하고 평가위원에 대한 이해관계자 기피신청 절차도 마련했다.
그러나 기업과 전문평가기관 간 NDA 체결 의무화나 제출된 기술자료의 보관·폐기, 정보유출 시 책임 범위 등에 관한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기술평가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면서 평가 과정에서 기업이 부담하는 정보유출 위험에 대한 대책은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도 기술평가 과정에서 기업의 핵심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보다 명확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평가기관의 내부 규정에 의존하기보다 기업이 제공한 정보에 대한 보호 의무와 책임 범위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른 대형 회계법인의 상장 관련 파트너는 "한국거래소가 전문평가기관을 재평가할 때 평가위원과 평가기관들이 NDA를 별도로 제출했는지를 평가 항목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