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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기금형 도입…운용업계 "초대형 시장 열리지만 책임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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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P 위험자산 70% 룰 단계적 완화
IMA·발행어음 편입 허용에 '머니무브' 기대
운용사 손해배상 입증책임 등 부담 늘어

5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 개편을 위한 정부의 종합 대책이 발표되면서 금융투자업계의 손익 계산이 분주해지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가 주도하는 기금형 수탁법인 설립이 허용되고 개인형퇴직연금(IRP)의 70% 위험자산 투자 규제가 완화되는 등 시장 확대 요인이 마련됐지만, 금융사에 부여되는 손해배상 입증책임 전환과 운영위험준비금 적립 등 고강도 수탁자책임 규제도 함께 신설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2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기금형 퇴직연금의 본격적인 도입이다. 수탁법인 설립 주체에 따라 ▲금융기관 개방형(영리법인) ▲연합형(복수 기업 및 노사단체 비영리법인) ▲공공기관 개방형(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우선 적용된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라 금융투자업계의 사업 영역도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우선 민간 금융회사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 형태로 별도의 영리형 주식회사(수탁법인)를 설립해 불특정 다수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직접 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비영리 형태로 출범하는 연합형 기금 역시 기회로 꼽힌다. 정부 방안에 따르면 연합형 수탁법인은 전문성 보완을 위해 자산운용 업무를 민간 전문기관에 전면 위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은 자체 수탁법인 설립 외에도, 대기업 협력사나 산업별 연합 기금의 총괄 위탁운용사(OCIO)로 참여해 대규모 일임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아울러 정부가 자산보관(신탁), 기준가 산출(일반사무관리), 운용성과평가를 외부 전문기관에 의무 위탁하도록 규정하면서 신탁사와 펀드평가사 등 금융 인프라 전반으로도 사업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영주닐슨 성균관대 교수(한국퇴직연금데이터 대표)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대해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낮추고 개별 근로자가 하기 어려운 자산배분과 위험관리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면서 "특히 자체적인 연금 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자산운용 규제도 완화된다. 정부는 현재 70%에 묶여 있는 IRP의 총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원리금보장 예·적금 대비 수익률이 높고 안정적인 대형 증권사의 핵심 상품인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연 3%대 안팎)을 DC형과 IRP 투자 대상에 전격 허용한다. 이에 따라 은행권 예금에 머물던 수십조 원의 자금이 증권사 실적배당 상품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에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에는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인위적으로 70%에 묶어두다 보니 가입 성향이나 시장 상황에 맞춘 적극적인 자산배분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한도 완화와 발행어음·IMA 편입은 실질 수익률을 높이고자 하는 가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 확대와 함께 금융사에 부과되는 관리·감독 기준과 수탁자책임 요건도 대폭 강화된다. 정부는 기금 난립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 개방형 수탁법인의 최소자본금을 120억원으로 설정했고 가입자 손실보전 등을 위해 적립금의 0.25% 수준을 '운영위험준비금'으로 의무 적립하도록 했다. 특히 업계가 가장 긴장하는 대목은 '손해배상 입증책임 전환'이다. 기금 운용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거나 이해상충, 설명의무 위반 등이 불거질 경우 수탁법인이 고의·과실이 없었거나 인과 관계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전문 수탁기관으로서 충실의무는 당연하지만 소송 시 무과실 입증 책임을 전적으로 금융사가 지는 구조는 적지 않은 부담"이라며 "실적배당 투자 과정에서 사후 소송을 의식해 지나치게 보수적·방어적으로 운용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구체적인 면책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조속히 확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러한 제도 개편은 퇴직연금사업자와 자산운용업의 경쟁구조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향후 퇴직연금시장의 경쟁은 상품 판매나 단기 수익률 경쟁에서 지배구조, 자산배분, 위험관리, 비용 및 장기 운용성과를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기관은 단순한 상품제공기관에서 가입자의 연금자산에 대해 실질적인 운용책임을 부담하는 수탁기관으로 역할을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산배분 및 위험관리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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