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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ESG채권' 양적 성장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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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광풍이 불고 있다. 특히 최근 ESG 채권 발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증권사 투자은행(IB) 업계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공기업, 금융회사, 일반 기업이 발행한 ESG 채권 발행액이 50조원을 돌파했다.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주택저당증권(MBS)을 제외하면 27조원을 넘어선다. 1년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ESG 채권 발행액은 지난해 발행된 ESG 채권 총액에 육박했다.


ESG 채권 발행 주체와 형태도 다양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공기업과 일부 금융회사에 국한됐지만, 올해는 민간 대기업들이 속속 ESG 채권 발행 대열에 합류했다. 금융지주사와 은행권은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한 조건부자본증권, 후순위채 발행에까지 ESG 인증 ‘딱지(?)’를 붙였다. 조만간 중견 기업들까지 ESG 대열에 합류하면 ESG채권 연간 발행 물량은 10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발행 물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 기관의 ESG 투자액도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대표 투자기관인 국민연금을 필두로 국내 대형 연기금과 공제회, 자산운용사들이 줄줄이 ESG 투자를 선언하고 나섰다. ESG 투자액이 늘어나다 보니 조금이라도 싼 금리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ESG 채권 발행에 합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대형 투자기관들의 ESG 투자 확대→ESG 채권 투자수요 증가→ESG 채권 발행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면서 ESG 채권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양적 팽창과 더불어 질적 성장도 동반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내 한 대형 투자기관의 투자책임자(CIO)는 최근 만남에서 ESG 투자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했다. ESG 투자가 수익을 보장해 주지 않는데 투자액을 늘리라는 직·간접적인 상당한 수준의 압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고위 운용자는 ESG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마땅한 투자처를 충분히 찾기 어려워, 발행 물량이 많은 ESG 채권으로 투자 총량을 늘린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녹색채권, 지속가능채권 등의 ESG를 상징하는 이름이 붙은 ESG 채권이 발행 구조나 투자 수익률 관점에서 일반 채권과 사실상 별 다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ESG 투자액을 늘릴 수 있는 수단으로 유용하다는 지적이다. ESG 채권이 투자 수익률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대외적으로 ESG 투자액이 많은 투자 기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실질적으로는 기금운용 평가 등에 활용하기에 좋은 수단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다.


ESG 채권의 경우 그린워싱(Green Washing)이 상당히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린워싱은 일명 '녹색세탁'으로, 어떤 상품의 친환경 이미지 만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ESG 채권에 대입하면 ESG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해당 분야에 투자하지 않거나 이행 내역에 대한 공시를 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석탄 관련 기업이 녹색채권을 발행하기 어려우니 ‘지속가능’이나 ‘사회’ 관련 채권으로 포장해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조달한 자금의 사용처가 아닌 해당 기업의 ESG 기여도를 평가해 ESG 여부를 판별하기도 한다.


ESG 채권의 양적 성과에 더해 질적 성장이 동반되지 않으면 ESG 바람은 자칫 내실 없는 'ESG 비용 부담'으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기업분석부 차장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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