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
닫기버튼 이미지
검색창
검색하기
공유하기 공유하기

[K-INVESTORS]④“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행동주의 안착이란 퀴즈를 풀고 있죠”

  • 공유하기
  • 글씨작게
  • 글씨크게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이창환 대표
국내 기업 운영과 이익 배분 과정에서 비대한 대주주 권한에 주목
“자본시장 커질수록 소수주주 친화적으로 제도 변화 예상”

편집자주한국 자본시장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어느 때보다 혼탁하다. 작전이나 반칙이 판을 친다. 그러나 외환위기부터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투자 세계를 개척해 개인 투자자들의 모범으로 떠오른 투자가도 많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자본시장의 전쟁같은 스토리와 그들의 철학, 실패와 성공담으로 돈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가치투자와 행동주의, 글로벌 '큰 손'으로 거듭난 국내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부터 사모펀드와 자산운용사를 이끄는 리더, 금융사 최고경영자 등 다양한 분야 고수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최근 기관 투자가와 개인 투자가 모두 주목하는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이창환 대표는 학창 시절 '퀴즈영웅'으로 불렸다. 86년생인 이 대표는 대구 외국어고 재학 때 KBS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역대 최연소로, 최고액(5810만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퀴즈(Quiz)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고 볼 때, 그는 여전히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행동주의 안착이란 퀴즈를 푸는 중이다. 그는 1%의 지분으로도 기업의 주가와 지배구조를 쥐락펴락하는 행동주의펀드의 대표가 됐다. 최근 투자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한다. 그가 움직이는 곳에 돈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읽는다. 그리고 끈질기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퀴즈영웅'이 된 이유

"제가 고등학교때 기숙학교를 다녔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갔어요. 토요일에 오면 엄마가 신문 6개를 쌓아놔요. 집 마당에 들어가면 신발과 가방 벗고 딱 앉아서 3시간 동안 신문을 첫장부터 끝까지 정독했어요. 공부하려고 한 게 아니라 진짜 그게 습관이었어요. 읽으면 그냥 다 입력이 되고, 그때는 머리가 쨍쨍 돌아갔던 것 같아요."


모자(母子) 가정을 이끌었던 이 대표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급식 보조원 일을 했다. 어머니가 모아놓은 신문이 이대표를 '퀴즈영웅'으로 만들었고, 퀴즈대회 상금은 당시 생활보호대상이었던 가족들이 버틸 수 있는 기반이 됐다.


"6명이 나와서 1등을 하면 '퀴즈영웅'에 도전할 수 있거든요. 네 문제 중에 세 문제를 맞히면 되는 거예요. 10회 정도 하면 퀴즈영웅이 한 명 정도 나옵니다. 상금이 5810만원인데 세금 떼고 기부하고 실제 받은 건 2500만원이었어요. 그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그걸로 엄마가 집을 샀어요. 2005년에 대구에서. 진짜 못 사는 동네였거든요. 엄마 월급이 얼마 안 되니까. 원래는 집이 있었는데 집을 팔아서 돈을 까먹으면서 쓰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퀴즈대회 이후에 집을 다시 사고 책도 냈어요. 출판사에서 전화가 많이 와서 인세로 1200만원쯤 받았어요. 대학교 들어갈 때 장학금을 받고 그렇게 대학 생활을 시작했죠."


이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골드만삭스를 거쳐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서울사무소에서 일했다. 서울대 재학 당시 떠난 싱가포르 교환학생 시절 우연히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 여름 인턴에 뽑혔고, 2012년 KKR이 서울사무소를 개설할 때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27세로 비교적 어린 나이였지만 오비맥주 매각, 티몬 투자, LS그룹의 동박·박막 사업부 인수와 매각 등 KKR의 거의 모든 국내 기업 투자와 회수에 참여했다. 해외파가 많은 IB 업계에서 순수 국내파이자 젊은 나이에 대기업을 상대해 본 경험은 그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자산이다. 이후 동학개미 열풍이 한창이던 2021년 주주행동주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KKR을 나와 얼라인을 설립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특수를 타고 국내 개인 투자자 수가 1400만명으로 급증하면서 기업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관심이 커지는 흐름을 읽었다. 그는 특히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경영권 분쟁과 금융지주사의 배당정책 변화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대표의 한마디에 기업들의 주가가 들썩거렸다. 이 대표는 특히 기관 투자자 사이에서 평판이 좋다. 이 대표가 기관에 보내는 레터는 조목조목 논리적이다. 얘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자본시장을 정화하고 싶은 의지도 강하다는 게 기관 투자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M&A에서 상장주식 투자로 전략 바꿔

"KKR에서 회사 경영권을 인수해서 좋게 만들고 값을 올려서 다시 파는 일을 계속했었어요. 그때는 그게 가능했죠. 그런데 국내 M&A 시장에서 기업들의 가격이 점점 높아졌어요. 옛날에는 싼값에 국내 회사들을 살 수 있었거든요. 왜냐면 그런 식으로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전략을 조금 바꿨습니다."



그는 국내 상장주식 투자로 눈을 돌렸다.


"우리나라는 상장 주식이 말도 안 되게 싼 편입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어서 싼 거죠. 싸게 사서 그 회사마다 맞는 방법으로 가치를 올릴 수 있어요. 저는 그런 차원에서 투자하는 겁니다. 상장기업의 주가가 올라가려면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투자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관심도 커졌어요."


국내 상장사들을 변화시키는 건 사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기업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때로는 대주주와 싸우기도 해야 한다. 얼라인파트너스가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는 연예기획사 에스엠 투자를 통해서다. K팝의 출발점이지만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에스엠의 지배구조와 기업문화가 바뀐 것은 이 대표의 역할이 컸다.


"시장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기업이 좋아지면 당연히 주가에 반영이 됩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면 돼요. 저는 글로벌 회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 상장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솔직히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이렇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한국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 변화를 꾀하기엔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국내 7대 은행지주을 상대로 주주행동에 나서 배당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은행주의 경우 지금까지 나설 사람이 없었어요. 외국인들은 못 해요. 외국인 주주가 많지만, 외국인이 나서서 기업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그동안 은행주는 인기가 없었던 거죠. 은행은 돈 잘 벌고 버는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주주환원을 잘했으면 인기 많은 주식이었을 겁니다. 좋은 투자라는 건 회사가 꼭 성장산업이 아니라도 번 돈을 잘 환원해주면 좋은 주식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아무도 요구를 안 했던 것이죠."


무르익은 한국 자본시장…변화는 필연적이다

그는 국내 기업의 운영과 이익 배분 과정에서 주주 권한이 대주주에 편중된 것에 주목했다. M&A보다는 상장주식 투자 전략으로 선회하기 위해 사회적 인식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2019년에 제가 활동을 시작했으면 아마 나쁜 헤지펀드가 멀쩡한 회사를 공격한다고 그랬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나라는 대주주가 너무 큰 권한을 갖고 있어요. 대주주의 전횡이 심한데 법적인 책임도 느슨하고요. 지금은 좀 바꿔줘야 합니다. 나중에는 균형 있게 잘 하실 겁니다.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주식시장이 저평가를 받으면 국가 경제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국내 증시가 대북 리스크 때문에 저평가된 게 아니에요. 중국과 긴장관계인 대만을 보세요. 대만 밸류에이션은 우리나라의 2배에요. 제도가 잘 돼 있기 때문이죠."


주식회사의 주주들은 주식을 가진 만큼, 그 회사의 이익도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이 대표는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은 여전히 주요 주주에게만 필요 이상의 권한과 이익을 부여하고 있다고 본다.


"20%를 가진 사람이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나머지 1%씩 가진 사람들한테는 아무것도 안 주는데 그걸 우리는 현 제도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겁니다. 과거에는 급속 성장을 위해 이른바 재벌기업들이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그게 오래 되다 보니 당연한 줄 알고 있지만, 그게 정상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되면 누가 투자를 하겠어요."


이 대표는 똑같은 회사가 1조 자본으로 우리나라서 회사를 만들면 1조원, 대만에서는 2조원, 미국에서는 4조원의 기업가치를 갖는다고 했다.


"미국서 주식 발행하는 게 이득이죠. 나는 1조원을 넣었는데 4조원에 사줘요. 얼마나 자금 조달하기 쉽겠어요. 우리나라에선 1조원의 자금을 투입해서 회사를 만들면 그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드는 무형적인 노력 이런 것들은 다 무시하고 똑같은 가격에 주식을 팔지 않으면 자금 조달이 안 되는 거죠. 대만처럼 최소 2배는 돼야죠. 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겁니다."


그는 자본시장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소수주주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제도적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이사들이 회사에 대한 의무만 있어요. 만약에 한 나라라고 생각해보세요. 국민들이 다 참여할 수 없으니까 국회의원을 뽑아서 운영하잖아요. 기업도 마찬가지죠. 주식회사는 주주들이 다 참여할 수 없으니까 이사를 뽑아서 경영하는데, 이사들이 모든 주주의 가치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하는 게 당연하겠죠."


한국에선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 대해서만 있고, 일반 주주들에 대해서는 없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놀라워한다. 상장사가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제도에서 어떻게 상장주식이 될 수 있냐고 합니다. 상법을 개정하든지, 판례를 바꾸든지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죠. 계속 이렇게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뀌겠죠? 제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렇게 해서 돈도 벌고 하려고요."


이 대표는 글로벌 PE에서 M&A 작업을 하던 때보다 주주행동주의 전략을 추진 중인 지금이 더욱 보람있다고 했다.


"저희 전략이 되게 좋은 점이 뭐냐면요, 예전에 M&A할 때는 제가 100%를 다 샀잖아요. 이 회사 잘 돼서 돈 벌면 100% 그냥 다 혼자 버는 겁니다. 지금은 제가 JB금융을 14%를 가지고 있지만, 주가가 오르면 나머지 86%의 주주들도 돈을 버는 거죠. 에스엠도 제가 1%밖에 안 가지고 있어도 주주제안 등 엄청 복잡한 일들, 고생은 제가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오르면 99%의 다른 주주들도 돈을 법니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서 제가 이 일을 한다 이런 건 아니고요. 당연히 저도 저한테 돈을 맡긴 분들이 있으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남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전략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보람이 있잖아요."


그는 현재 우리 자본시장이 정말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있다고 봤다.


"한국 기업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열심히 참여하고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의의 사도' 이런 건 절대 아니고요. 저도 펀드 수익을 추구하려고 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비상장사나 아주 조그만 회사면 대주주가 자기 마음대로 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상장사는 주주가 엄연히 있는 회사인데 대주주 때문에 주가가 반토막, 3분의 1토막이 나면 자본주의에서 그게 죄악이죠. 그런 걸 막아야죠."


해외에서 자금 모아 국내 상장사에 투자할 계획

후진적 행태 탓에 저평가된 상장사에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려면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올해 연말까지는 해외 펀드레이징에 집중할 계획이다. 최소 2000억원 정도 규모를 해외에 조성한다는 목표다. 그게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어떤 회사를 사든 5%는 사야 하는데 저희 펀드 규모가 아직 너무 작습니다. 총 2700억원 정도 규모에요. 해외 투자자들이 제가 하는 이런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해외 자금을 좀 모아보려고 해요. 기존에는 저희 펀드가 다 100% 국내 투자자로만 돼 있거든요. 해외 대형 기관들에 찾아가서 요청해야죠. 에스엠이나 금융지주 사례로 보여줬잖아요.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 상장주식에 투자할 예정입니다. 펀드를 대형화시키려면 기관들의 자금을 받아야 해요. 한 1조원까지는 가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자신감이 좀 생겨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