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재판 과정에서 자사주 전량 소각 방침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1일 법조 및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이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 재판에서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자사주 취득이 가능하게 되면 이후 매입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MBK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서는 기간(9월13일~10월4일)에는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재판부에 가처분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기존의 최대 주주의 지배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으며 우호적인 기업과의 주식 교환을 통한 우호지분 확보도 가능해진다.
MBK 측은 자본시장법 제140조에 근거해 고려아연이 영풍의 계열회사이기 때문에 법으로 정한 '특별관계자'에 해당하며, 따라서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기간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고려아연은 "영풍과 MBK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면서 고려아연이 영풍의 특별관계인이 아니라고 공시했다"며 자사주 취득이 합법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재판부는 MBK·영풍 연합과 고려아연 등 양쪽으로부터 추가 자료를 받고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결정을 내릴 방침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이 이번 재판을 통해 '자사주 전량 소각 방침'을 밝힌 것은 우호 기업과 자사주 교환을 통한 의결권 지분 확보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쓰겠다는 내용으로 재판부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고려아연이 앞으로 매입할 자사주는 전량 소각할 예정이지만, 종래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2.4%)에 대해서는 소각 목적 외에도 임직원 성과보상 등에도 일부 활용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자사주 매입'과 '대항 공개매수' 투트랙 전략을 쓸 수 있게 된다.
법원이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준다면 고려아연은 외부 사모펀드와의 협력을 통한 지분 확보 외에도 법인 보유 자금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분을 더 늘릴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최근 기업어음(CP) 발행으로 4000억원을 마련하고 증권사 대출 등의 실탄을 준비해 둔 것도 자사주 매입을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법원이 영풍·MBK 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고려아연의 경영권 방어 수단 중 하나인 자사주 매입은 불가능해진다.
이 경우 최 회장 측은 대항 공개매수 카드만으로 경영권을 지켜야 한다. 최 회장 측이 경영권 수성을 위해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지분은 최소 6% 수준으로 평가된다.
MBK 측이 1주당 공개매수가를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인상한 만큼, 최 회장이 '지분 6% 확보'를 위해 주당 80만원에 대항 공개매수에 나선다면 필요 자금은 총 1조3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고려아연 측이 최씨 일가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우호 세력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도 대항 공개매수를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해 일본 도쿄를 찾아 세계 최대 광산 기업인 BHP 일본법인 소속 고위관계자와 회동하고, 글로벌 투자회사인 일본 소프트뱅크 측과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계열사인 켐코의 최내현 회장과 고려아연 호주 계열사인 아크에너지 최주원 대표 등도 글로벌 우호 세력 확보를 위해 뛰고 있다.
최 회장 측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과도 접촉해 1조원 안팎의 자금 마련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MBK·영풍의 공개매수 종료일인 다음 달 4일 이전에 대항 공개매수를 시작하려면 늦어도 다음 달 2일까지는 자금 예치와 공개매수 신고서 제출을 마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