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대규모 인적쇄신 이어 구조조정
신동빈 회장, 유동성 위기설 진화 총력
롯데그룹이 대규모 임원 교체를 단행한 데 이어 자산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대규모 인적 쇄신과 전방위 구조조정을 통해 최근 불거진 유동성 위기설을 진화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전날 여의도 교직원공제회에서 기관투자가 대상 기업설명회(IR)를 열고 계열사별로 자산 효율화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밝혔다. 같은 날 오전 전체 대표이사 60명 중 21명을 교체하는 고강도의 물갈이 인사를 발표했던 만큼 설명회에는 3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몰린 것을 전해진다.
롯데그룹, 자산매각 본격화
올해 정기인사를 통해 3개 사업부 대표가 전부 교체된 롯데호텔은 면세점과 호텔 부문을 중심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호텔 브랜드 중 4성급 호텔에 속하는 ‘L7’과 ‘시티’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롯데호텔은 국내외에서 8개의 시티호텔과 6개의 L7호텔을 운영 중이다. 5성급 럭셔리 호텔에 대한 수요가 커진 데 따라 4성급의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 호텔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모습이다. 롯데호텔은 영업비용 절감을 위해 월드타워 내 호텔영업 면적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다만 롯데그룹 측은 "검토 중인 사안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롯데면세점은 실적이 부진한 해외 면세점 정리에 나선다. 롯데면세점은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 시내면세점 4곳 공항면세점 10곳을 운영 중이다. 면세사업부는 호텔롯데 매출의 70%가량을 책임지고 있지만, 수익성 면에서는 회사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 1~3분기 누적 기준 매출액은 2조4480억원, 영업이익은 -922억원이다. 매출액은 지난해 대비 2000억원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해외면세점의 경우 순이익을 내는 면세점 수는 손에 꼽힌다. 지난해 기준 롯데면세점 간사이점의 연간 순손실액은 32억원, 다낭공항점 등 베트남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합작법인(Lotte Phu Khanh Duty Free)의 지난해 순손실액은 240억원에 달한다. 호주 멜버른, 브리즈번 등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법인 역시 35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롯데그룹은 면세 사업부의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위해 롯데지주 HR 혁신실 기업문화팀장 출신의 김동하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켜 대표이사로 올렸다. 빠른 추진력을 바탕으로 사업 조직을 강하게 개혁할 적임자로 평가했다.
CEO 대거 교체된 롯데케미칼, 신규 투자 계획 축소…쇼핑은 7조 규모 자산재평가
롯데그룹 화학군의 롯데케미칼은 저수익 자산을 매각해 기초화학 부문의 비중을 30% 이하로 낮추고 첨단소재 비중을 높이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사업수익과 비교해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계획을 조정해 지출을 줄이겠다는 뜻도 밝혔다. 다만 2030년이 되어야 실적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속적인 실적 부진으로 2조원 규모의 회사채가 기한이익상실(EOD) 상태에 빠지면서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촉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은 6조원 규모의 그룹의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해 회사채 신용도를 보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화학 군의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화학군 대표 13명 중 10명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롯데 화학 군을 이끌 이영준 신임 총괄대표는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대표이사 출신으로 화학과 소재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1년 동안 롯데 화학 군을 이끌었던 이훈기 사장은 롯데지주 경영혁신실장 재임 시 추진했던 투자와 화학 군의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용퇴했다.
롯데그룹 유통 부문의 롯데쇼핑은 자산 효율화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롯데쇼핑은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자산 재평가를 진행 중이다. 재평가 대상 자산은 7조6000억원 규모의 토지 자산이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 가치만 보아도 2009에는 ㎡당 3억400만원이었지만 현재 가격은 90% 오른 6억5300만원으로 파악된다.
앞서 롯데쇼핑 측은 "재무구조가 개선됨에 따라 해외사업과 리테일테크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채비율 하락으로 신용도 강화, 자본 확충을 통한 조당비용 감소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롯데백화점은 부산 센텀시티점을 포함 부실 점포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롯데쇼핑의 e커머스 사업부 롯데온은 2026년 흑자 전환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롯데온은 지난해 재무 전문가로 알려진 박익진 대표가 수장으로 오면서 비용 절감 등 고강도 체질 개선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롯데월드타워에서 나와 삼성동으로 본사를 옮겨 임차료 절감에 나서기도 했다.
화학산업 부진…그룹 전체가 '휘청'
롯데그룹이 대규모 유동성 개선 계획을 밝힌 것은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매년 수조 원대의 이익을 벌어들이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롯데케미칼의 실적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롯데그룹 전체로 유동성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롯데케미칼의 영업이익은 연결기준 1조5000억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3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중국의 경기 부진으로 소재 수요가 급감하면서 올해 영업손실은 더욱 확대됐다. 올해 3분기 4000억원대 손실이 반영되며 누적 손실액만 6600억원을 넘어섰다. 업황 부진 속에서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5조2000억원)'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2조7000억원) 등을 추진하며 비용이 급증한 점이 패착으로 꼽힌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는 롯데케미칼의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올해 3분기 기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성 채무가 8조3000억원 규모로, 지난해 6조5000억원에서 27% 급증했다. 특히 단기차입금과 사채가 1조원 넘게 증가했는데,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장기차입금과 단기 사채가 급증한 영향이 컸다.
롯데케미칼 신용등급(AA) 전망이 지난 6월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되면서 안정적인 장기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기업어음(CP) 등 단기 시장에서 유동성을 끌어온 것이다.
이 같은 롯데케미칼의 재무난은 롯데지주로 옮겨붙는 모습이다. 롯데지주는 외부 차입을 늘리며 자회사 투자와 신규사업(롯데바이오로직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원가(이자비용 등) 증가로 부담이 계속되면서 지주 지원도 여의찮은 상황이다. 3분기 누적 기준 롯데지주의 금융 원가는 3873억원으로 지난해 3242억원보다 400억원이나 더 많다. 금융 원가 증가는 기업 순이익 감소에 영향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