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재무학회 국제학술대회 개최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두고 전문가 토론
소수주주 다수결·의무공개매수 도입필요
의결권 자문사도 지적…"제값 지불해야"
국내 자본시장의 만성적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국 특유의 중복상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상법 개정으로 신규 중복 상장이 막혔지만, 기존 중복상장 역시 넘어야 할 산으로 본 것이다.
3일 아시아재무학회(Asian-FA)가 서울대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의 '주주관여 활성화' 관련 특별세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 지배구조 파괴의 주범으로 중복상장을 꼽았다. 30~40% 남짓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의 지배력은 극대화하지만, 실제 대다수 지분을 가진 소액주주의 영향력은 낮춰 극심한 이해상충을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기존 중복상장도 막아야…당근과 채찍 필요
김형균 차파트너스 본부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일본 기업들이 사업구조를 효율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상장된 자회사를 상장폐지했지만 한국에는 그대로 뒀다"며 "히타치에 그 배경을 직접 물었지만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소액주주를 보호할 의무가 없는 한국의 허술한 규제와 법적 환경을 철저히 누리고 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임성윤 달튼코리아 대표는 중복상장 해소를 위해 '소수주주 다수결(MoM)'과 같은 제도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소수주주 다수결 제도는 기업의 합병, 물적분할, 주식교환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가 상충하는 주요 안건을 처리할 때, 이해관계가 있는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반주주(소수주주) 과반수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제도다. 임 대표는 "한국에서는 재벌과 같은 오너일가의 통제력이 유독 높고, 중복상장 사례도 이들의 계열사 사이에서 대개 일어난다"라며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계열사 간 거래에 있어서는 지배주주 일가의 의결권을 제외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소수주주들에게 훨씬 더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기존 중복상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확실한 '당근'과 '채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렇게 해서 변화를 목격하고 개혁의 진전으로 이어졌다"라며 "정부가 진정으로 기업 지배구조와 증시를 개선하고 싶다면, 기존 중복상장 구조를 혁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 특유의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미국처럼 일반 주주의 지분까지 모두 사들이는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의무공개매수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회사 지분 전체를 인수해야 하므로 중복 상장 문제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는 인수합병(M&A) 시장 위축을 우려해 '50%+1주'와 같은 절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중복상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베어허그, 미국에선 선순환 역할
토론의 좌장을 맡은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베어허그(적대적 인수 제안)'도 화두로 올렸다. 김 교수는 "베어허그는 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공개매수를 제안하는 형태다"라며 "만약 피인수 기업의 이사회가 진정으로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제안을 결코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과거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서 근무한 경험을 사례로 설명했다. 그는 "당시 북미 펀드들은 저평가된 상장사 지분을 5% 정도 매입한 뒤, 이사회에 접근해 이렇게 '당신 회사는 지금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6배에 거래되고 있는데, 우리는 회사 전체를 10배에 사고 싶다'고 제안한다"며 "국내 대기업에서 이런 제안을 하려면 이사회가 비웃으며 무시하겠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제안이 들어오는 순간 즉각 절차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사회는 주주충실의무에 따라 즉시 자문사를 고용해 이 제안이 공정한지 판단해야 한다. 제안을 받아들여 인수되면, 그 회사는 상장폐지돼 시장에서 사라진다. 이 대표는 "저평가된 기업이 제값을 받고 시장에서 퇴출되는 구조"라며 "이 과정에서 시장의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도 M&A 공시제도를 개선해 이사회가 적대적 M&A 제안에 대한 공식 의견을 공시하도록 법제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M&A 공시제도 개편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계적 권고하는 의결권 자문사…결국 '효율성' 문제
국내 의결권자문사 역할에 대한 의문과 지적도 나왔다. ISS 같은 의결권 자문사들이 집중투표제 도입 반대 등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결정을 권고한 것이 국내 자본시장 규제가 미비한 점을 의도적으로 노린 '규제차익'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대표와 임 대표 모두 이러한 시각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한국의 경우, 의결권 자문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다기보다는, 단순히 '고객(해외 기관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라며 "외국인 주주들을 직접 만나보면, 그들은 한국 자문사들의 반대 권고에 대해 매우 당혹스러워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해외 기관들이 자문사에 한국 시장 지배구조를 꼼꼼히 분석하라고 충분한 예산을 주지 않으니, 자문사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보고서를 쓰기 위해 기계적 기준만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분석가 3명이 한국 기업 2000개를 단 2주 만에 검토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비용을 줄이기 위한 그들의 고육책일 수는 있겠지만, 철저히 소액주주를 외면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임 대표는 해외 자문사들의 한국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도 짚었다. 그는 "해외 기관들의 경우, 한국 비중이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너무 작다 보니 ISS 같은 자문사 리포트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자문사들은 한국의 독특한 지배 재벌 통제 구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행동주의자들이 해외 투자자들을 찾아가 한국 시장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국내 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으로부터 자금을 위탁받은 운용사들이 정작 의결권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김 본부장은 "위탁 운용사들은 기업 분석 전문가들이지만 권한이 없고, 정작 의결권을 가진 국민연금 내의 기금운용본부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투자 비전문가들이나 이해관계자(교수, 노동조합 추천 인사, 사용자 단체 추천 인사 등)들로 꾸려져 일종의 블랙박스처럼 운영된다"며 "자금을 맡긴 행동주의 펀드나 전문 위탁 운용사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해 전문가들이 책임지고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