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 폭식에 배전 직류 전환 확산
전력 변환 손실 최소화·공간 효율 극대화
엔비디아 800VDC 표준 제정 신호탄
반도체 변압·차단기 시장 선점 경쟁
1880년대 미국에선 전력망 상용화 주도권을 두고 토머스 에디슨의 직류(DC) 진영과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AC) 진영이 맞붙었다. '전류 전쟁'의 승자는 교류였다. 변압기로 전압을 쉽게 조절해 전력을 멀리 보낼 수 있어 대규모 장거리 송전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확산으로 직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력 소비가 급증하면서 전기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는 일이 중요해졌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AI 클라우드 플랫폼 업체 비전베이와 함께 800V 직류 배전 기반의 차세대 AI 팩토리 플랫폼 'K-1'을 공개했다.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과정을 중앙에 모으고, 800V 직류 전원을 서버 가까이 공급해 전력 분배 단계와 손실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는 엔비디아의 직류 기반 AI 데이터센터 구상을 양산형 인프라로 구체화한 사례다. 향후 베라 루빈 플랫폼 적용과 함께 데이터센터의 800V 직류 전환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직류 전환의 배경에는 AI 서버의 전력 소비 증가가 있다. 과거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모아놓은 랙당 소비 전력이 10㎾ 안팎이었지만,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집적되면서 100㎾에서 많게는 1㎿에 이르게 됐다. 전력 공급 효율이 데이터센터 운영비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기존 교류 기반 데이터센터에서는 공급받은 전기를 변압기로 낮춘 뒤 무정전전원장치(UPS)에서 직류로 바꿨다가 다시 교류로 되돌린다. 이후 서버 내부 전원공급장치(PSU)에서 반도체 칩이 사용하는 직류로 다시 변환한다.
이 과정에서 전력 일부가 열로 소모되고, 이를 식히기 위한 냉각 전력도 필요해진다. 원화를 달러·엔화·유로화로 거듭 환전하며 수수료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
업계에 따르면 내부 전력망을 직류로 일원화하면 변환 단계를 1~2단계로 줄여 전력 변환 손실을 30% 이상 절감하고, 전체 에너지 효율을 5~10% 높일 수 있다. 변환 장치와 수배전반의 부피가 줄어든 공간에 서버 랙을 추가로 배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엔비디아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 방식을 직류로 전환하는 데 앞장섰다. 800V 직류 배전을 추진하며 파트너사에 관련 전력 설비 설계를 주문하고 있다. 기존 415V 교류 방식으로 고성능 GPU 랙에 대용량 전력을 공급하면 전선이 두꺼워지고 발열 부담이 커지는 한계가 있었다. 전압을 800V로 높이면 같은 전력을 더 적은 전류로 공급해 전선 굵기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사들도 고전압 직류 배전 도입에 나서고 있다. ABB와 슈나이더 일렉트릭, 지멘스 등 전력기기 업체 역시 데이터센터용 직류 수배전반과 전력 변환 장치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존 교류 인프라의 투자 비용과 글로벌 표준 부재 등으로 직류 전환이 더뎠다"며 "전력 소모가 커진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움직이면서 직류 데이터센터와 공장 구축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는 직류 배전 시장이 데이터센터와 LS일렉트릭 천안 DC 팩토리 등을 중심으로 초기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확대의 핵심 과제로는 반도체변압기(SST)와 반도체차단기(SSCB)의 기술 고도화가 꼽힌다. 직류는 교류와 달리 전류가 주기적으로 0이 되는 시점이 없어 사고 때 발생하는 아크(불꽃)를 끊기 어렵다. 전류를 신속히 차단하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변환하는 기술이 중요한 이유다.
이상현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직류 전환이 가속할수록 반도체 변압·차단기 등을 얼마나 잘 최적화해 설계하느냐가 전력기기 업체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SST와 SSCB의 양산 및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LS일렉트릭이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