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순위가 개선됐다고 샴페인 터뜨릴 때가 아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평가 순위가 아시아·태평양 12개국 중 5위로 개선된 데 대해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당장 주주들의 반발이 거센 의무공개매수제도 등 당면 과제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국가 순위가 다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거버넌스포럼은 5일 논평을 통해 "의무공개매수제도, 3월 주주총회 등 당면 이슈를 잘못 처리하면 (거버넌스 순위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날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표한 'CG Watch 2026' 국가별 기업거버넌스 순위에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12개국 중 공동 5위를 기록했다. 직전 평가 8위에서 3단계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순위 상승은 예상된 결과다. 아마르 길 ACGA 사무총장은 지난 6월 아시아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을 비롯한 한국의 자본시장 개혁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올해 순위 상승 가능성을 예고했었다. 블랙록, 뱅가드, 국민연금 등을 회원사로 둔 ACGA는 아시아 지역 기업 지배구조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연구 및 자문을 제공하는 국제단체다.
거버넌스포럼은 "예상대로 한국의 순위가 껑충 뛰었다"며 "(순위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국회 주도의 1~3차 상법 개정으로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의 점수(62.8)가 상대적으로 경제발전 단계가 낮은 말레이시아(공동 5위, 63.2)보다 낮다는 점을 주목했다. 포럼은 "외국투자자들은 2025년7월 이후 국회 문턱을 넘은 투자자 보호 정책들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럼은 "이웃나라 일본은 국제투자자의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2위를 굳혔고, 주주친화적인 싱가포르, 대만 톱3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국제금융계는 독립성이 매우 취약한 한국 이사회에 깊은 불신이 있다. 유명무실한 거래소 중심의 밸류업 정책에 회의감도 있다"고 짚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올해 220조원 이상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한 사실도 언급했다. 포럼은 "상반기 매도가 급등한 반도체 주식의 이익 실현이었다면, 하반기 처분은 순항하던 투자자 보호 정책의 유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며 "지난 7월부터 이런 걱정은 현실화됐다"고 꼬집었다.
특히 포럼은 이번 ACGA 연례총회가 열린 대만에서 수많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이러한 우려를 표했다는 사실도 경계했다. 포럼은 "수많은 외국인투자자 모두 이사충실 의무에 역행하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에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며 "현 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전혀 부합하지 않고 안분매수 마저 없는 비대칭적(disproportionate)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은 의무공개매수 정무위 의결안은 인수·합병(M&A) 시장 위축을 이유로 매수 물량을 '50%+1주'로 제한한 것이 골자다. 대주주 지분 선행매수까지 허용하며 각종 꼼수 우회 시나리오들이 제기되는 상태다. 이 경우 일반주주 보호라는 기존 제도 도입 취지에 역행할 수 밖에 없다.
차기 ACGA 평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변수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만이 아니다. 포럼은 개정 상법의 안착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인 내년 3월 주총 역시 주요 변수로 주목했다. 회사별로 실질적인 독립이사가 1~2명 선임되는지, 공정하고 투명한 주총이 이뤄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베어허그 제도 입법을 통한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할인 해소, 강제성을 가미한 밸류업 정책 재가동, 개정 스튜어드십 코드의 정착 등도 중요하다고 봤다.
포럼은 "주주평등 원칙에 입각한 의무공개매수제도, 공정한 3월 주총, 베어허그 도입, 강제성 가미된 밸류업 정책 재가동 등 현안 처리 실패시 국가 순위가 다시 밀릴 수도 있다"며 "다음 평가에서는 호주, 일본과 함께 톱 3 진입을 목표로 하자"고 강조했다. 이번 발표에서 호주는 75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일본(69.8점), 싱가포르(67.8점, 공동3위), 대만(67.4점, 공동3위) 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