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영풍 연합,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예정
경영권 분쟁 중 유상증자 불법성 강조
과거 판례는 고려아연에 불리…증자목적 소명 필요
최윤범 측 "분쟁으로 인한 주주피해 해소 목적"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고려아연의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대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중 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는 불법 소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MBK·영풍 연합은 분쟁 상대방 지분율 희석, 우리사주조합 배정을 통한 우호 지분 확보 등을 노린 편법·탈법 유상증자라며 맹비난했다.
이 가운데 기존 판례상으로는 MBK·영풍 연합 쪽 주장이 힘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3년 KCC(당시 금강고려화학)와 현대엘리베이터 간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추진한 대규모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법원이 차단한 바 있다. 고려아연이 기존 판례를 뒤집으려면 이번 유상증자가 충분한 경영상의 목적이 있다는 점을 소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분쟁 중 3자 배정 증자는 ‘불법’…‘일반공모’ 택한 고려아연
고려아연은 30일 긴급 이사회에서 약 2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시가 대비 30% 할인된 가격에 신주 373만2650주를 일반공모 방식으로 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우리사주조합에 신주 발행 물량의 20%를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또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한 청약자들은 공모주식 수의 최대 3%를 넘겨 배정받을 수 없도록 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기관이나 외국인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규모 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투자은행(IB) 업계는 고려아연이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택한 것은 불법성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특정 우호 주주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3자 배정 유상증자는 주주 평등의 원칙에 위배돼 대부분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린다"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MBK·영풍 연합은 고려아연이 형식상 공모 방식을 취했더라도 경영권 방어 목적이 다분해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사주조합 등 우호 주주들이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경영권 분쟁에 대응하려는 ‘꼼수 증자’라는 지적이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공모가는 현재 주가 기준으로 기준 주가에 할인율 30%를 적용한 67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최종 공모가는 청약일 전 과거 3~5거래일까지의 가중산술평균주가에 할인율 30%를 적용해 산정된다. 대규모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 하락을 고려하면 오는 12월 청약 시점 공모가가 50만원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주가가 70만원 밑으로 떨어지면 공모가가 50만원을 하회한다.
MBK·영풍 연합 측 관계자는 "유상증자 공모가가 경영권 분쟁 이전 주가보다 낮게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리사주조합 등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우호 주주들이 상당히 낮은 가격에 지분을 살 기회를 열어준 편법·탈법 유상증자"라고 지적했다. 반면 "고가에 지분을 취득한 기관 및 일반 주주들은 지분율 희석의 희생양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1인당 배정 주식 수를 제한한 것도 MBK·영풍의 지분율 희석을 노린 것으로 평가했다. 최 회장 측 지분율도 같이 희석되지만 우리사주조합 배정 물량이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합류하면 양측의 지분율이 역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판례는 MBK·영풍에 유리
과거 판례상으로는 MBK·영풍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현대그룹 지주사이던 현대엘리베이터가 KCC와의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추진한 대규모 유상증자에 법원이 제동을 건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KCC는 당시 신한BNP파리바 사모펀드(PEF) 등과 함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0.78%를 매집해 현대그룹 경영권을 위협했다. 이에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은 발행주식의 178%(1000만주)에 달하는 신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일반공모 방식, 30%의 할인율을 적용한 신주 발행가, 1인당 청약 한도 300주로 제한 등이 현재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유상증자와 닮았다.
이에 KCC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를 막아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KCC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경영권 방어 자체가 회사와 일반 주주에게 이익이 되면 예외적으로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한 신주 발행이 허용되지만, 이번 신주 발행은 그렇게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면서 "1000만주 유상증자는 회사 경영을 위한 자금조달 목적이 아니라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기존 대주주와 현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목적으로 이뤄졌다는 KCC의 소명자료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고려아연이 과거의 판례를 뒤집으려면 이번 유상증자가 경영권 분쟁에 대한 대응책이 아니며 회사와 일반 주주에게 충분한 이익이 된다는 점을 피력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 중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고 대규모 유상증자가 일반 주주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주장할 근거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고려아연, 합법적 유증…왜곡·시장교란 심판할 것
고려아연은 "이번 유상증자는 기업 투명성 제고, 상장폐지 가능성, 주가 변동에 따른 주주 피해 최소화 등을 위해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한 일"이라며 "일반 국민 등 다양한 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회사 경영과 발전에 큰 제약 요건으로 작용하는 지속적인 분쟁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초래한 주가 급변동과 기업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 때문에 유상증자를 하는 것"이라며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일반공모 유상증자에 대해 MBK·영풍 연합 측이 왜곡과 시장교란 행위를 지속하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