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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조달 우회로]②공모채 발행 어려운 기업들 사모채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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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에만 4조3000억원어치 발행
BBB급 기업·중견건설사 유동성 확보 창구
일반 사모채 불가능하면 옵션부사채로

편집자주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시작된 가파른 금리 인상은 기업의 자금 담당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언제까지 얼마나 금리를 올릴지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다. 레고랜드 사태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공포에 금융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자금 시장도 요동쳤다. 불안한 시장 환경에서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들은 물론 우량 대기업들도 기업어음(CP), 사모 회사채, 옵션부사채 등 공모 회사채가 아닌 자금 조달 우회로를 찾아 나섰다.

신용도 문제로 공모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은 CP 시장과 함께 사모채 시장을 창구로 필요한 유동성을 마련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까지 겹친 건설사들의 사모채 발행이 특히 많았다.


사모채는 증권신고서 제출,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장에 수요가 있을 때 기관 투자자 또는 증권사와 조건을 협의해 발행하면 된다. 이 때문에 공모 회사채 절차를 회피하거나 기관 투자자 모집이 어려운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투자 수요를 찾아 발행한다. 신용도가 우량한 대기업들도 좋은 금리 조건을 제시하는 투자자가 있을 때 소액으로 발행하기도 한다.


태영 등 신용도 우려 짙은 기업 자금조달 수단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에 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사모채(주식형채권, 유동화채권 제외)는 총 4조3140억원어치다. 일반 사모채와 옵션부사채가 전체 물량의 약 절반씩 발행이 이뤄졌다. 옵션부사채는 투자자와의 협의에 따라 콜옵션(발행사의 조기상환권)과 풋옵션(투자자의 조기상환 청구권) 등의 조건을 붙인 채권이다.


그룹 중에서는 태영그룹의 사모채 발행량이 가장 많았다. 티와이홀딩스가 연초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투자자로 4000억원어치의 사모채를 발행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부도설이 나돈 태영건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발행한 사모채 만기는 4년으로, 2년이 지난 시점부터 티와이홀딩스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티와이홀딩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채권 발행이 가능해진 태영건설은 추가로 16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해 유동성을 마련했다. 태영건설은 1000억원의 일반 사모채와 600억원 규모의 콜옵션부 사모채권을 발행했다.


LG그룹은 385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했다. 대규모 적자에 공모채 발행이 어려워진 LG디스플레이가 1분기에만 3370억원어치의 사모채를 발행하면서다. LG그룹 주요 계열사 중 신용등급(A)이 낮은 팜한농이 50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했다. LG전자·LG화학·LG CNS·LG이노텍 등의 LG그룹 우량 계열사 대부분은 공모 회사채로 유동성을 마련했다.




공모채 발행이 쉽지 않은 BBB급(BBB+~BBB-) 기업들은 1000억원 미만의 자투리 사모채를 연속으로 발행했다. 아이에스동서(700억원), 두산에너빌리티(700억원), AJ네트웍스(340억원), LS네트웍스(300억원) 등이 사모채로 차입금 상환이나 운영자금 등을 마련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공모채는 금리 입찰 방식으로 투자자를 공개 모집하는 데 반해 사모채는 고금리를 원하는 기관 투자자와 조건을 협의해 발행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금리 수준이 높다"면서 "공모채 발행이 쉽지 않은 기업들의 대체 자금조달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견 건설사, 옵션부사채 많이 발행

사모채 발행도 쉽지 않은 기업들은 옵션부사채로 유동성을 마련했다. 주로 건설사들의 옵션부사채 발행이 많았다.


태영건설은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300억원씩 총 600억원의 옵션부사채를 발행했다. 태영건설이 콜옵션을 보유해 만기 전에 조기상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동부건설은 지난달 NH투자증권 주관으로 6개월 만기의 풋옵션부채권을 두 차례로 나눠 발행했다. 콜옵션이 붙은 채권과는 달리 투자자가 만기 전에 조기 상환을 청구하면 곧바로 상환해야 한다.


KCC건설은 키움증권 주관으로 200억원어치의 콜옵션부사채를 발행했다. 만기는 3년이지만,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콜옵션을 행사해 만기 전 조기상환할 수 있다. 신세계건설은 유안타증권 주관으로 옵션부사채를 발행했다. KCC건설이 발행한 옵션부사채와 같은 구조의 사모채다.


대기업 계열사 중에서는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려다가 투자자 모집에 실패한 효성화학이 300억원 규모의 옵션부사채를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우리종금이 주관한 채권으로 만기 3년에 발행 후 6개월 후부터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다. 넥센타이어도 금리만 다른 같은 조건의 사모채를 700억원어치 발행했다. 혈액제제(인간의 혈액으로 만든 의약품) 제조·판매 기업 SK플라즈마는 SK증권 주관으로 풋옵션부채권 1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농협생명보험, 하나대체자산운용, 푸본현대생명은 각각 2500억원, 1000억원, 600억원어치의 신종자본증권을 사모로 발행했다. 신종자본증권은 콜옵션이 붙어 있는 만기 30년의 영구채로, 주로 금융회사들이 자본적정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 발행한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콜옵션은 발행 기업의 권리이고, 풋옵션은 투자자의 권리여서 옵션 종류에 따라 옵션부사채의 금리가 달라진다"면서 "하지만 발행 기업들 대부분이 일반 채권 발행이 어려워 대부분의 옵션부채권 금리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콜옵션도 발행사가 사실상 강제 이행해야 하는 것이 많아 만기가 긴 것 같지만, 사실상 단기자금 조달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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